나의 많은 시작은 직장이었다

by miel



최근 다음 소희라는 영화가 개봉하였다. 배두나의 출연으로 유명햐진 콜센터의 이야기다. 나와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전화상담이라는 공통의 수단으로 근무하기에 또 나역시 그곳에서 근무를 해봤기에 공론화 되는 것은 노동인권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간의 이직사는 아주 화려했으며, 체력이 약하고 변변찮은 커리어가 없었기에, 과도한 노동과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만이 나를 기다리는 직장들에서 좀 더 나은 곳, 좀 더 편한 곳을 찾아서 헤매이며 왔다.


최근 실적차등제로 변경되며 이전의 수입보다 50%정도 낮아지고, 스트레스는 몇십배 가중되지 이직을 생각하였다. 정적인 성향에 맞게 베이비시터나 심리상담사를 하고 싶었다. 그간 뭔가를 배울 여력이 부족했던 것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 재정이 안정이 된 상황이 되었을 때 움직이려 다양한 업종을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심정적일 뿐, 실제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움직여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적응하게 될 새로움에 대한 작은 공포감과 육체적 노동이 더 심한 곳이거나, 아니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서 자격증을 취득하여도 실제 취업할 수 없다는 현장에 있는 이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이제는... 이제는 더 이상은 직장을 옮길 수 없는 중년이라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였다.


한편으로는 이제야 비로소 정착하게 되었구나 라는 안도감도 조금은 들었다. 나이가 드는 서글픔은 이 체력적 한계에서부터 시작되겠구나라는 짐작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에 그렇게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이제는 더 이상 싫으면 안 하고,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고, 참지 못하면 참지 않고 라는 것이 되지 않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내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간 남들보다 훨씬 더 자유스럽게 살아온 것도 사실이며 그것은 기질적 성향도 있었고 그것은 예술적 성향이라고 합리화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예술분야에 있는 사람도 어쩌면 더더욱 생계를 이어가야 하고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하고 싶지 않은 직업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전업작가를 간절히 꿈꾸고, 어쩌면 직업의 스트레스에서 한 순간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어 연애를 꿈꾸며, 어쩌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신앙생활을 하며 위로를 받고 살아온 것이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얼마 후 그것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인구의 대다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살고, 하고 싶은 일을 이루더라고 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함께 일해야 하는 것이 노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간극은 너무나 크다. 이 강을 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먹은 죄의 대가로 부여받은 죽을 때가지 고단하게 노동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인간이 가장 힘겨워 히는 영역은 일이다.


가만히 이 직업을 생각해 본다. 근무시간은 공무원급이다. 기본급이 없는 실적제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도한 경쟁 속에서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는 스트레스를 평일동안 지속하며 살아간다. 조금만 더 이과적 성향 강했더라도 이 직업이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라고도 짐작한다.






나는 나를 너무 모른 체 그저 고정적인 월급이 아닌 노력한 만큼 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이 한 줄의 문장 때문에 아주 어렸을 때 시작했던 세일즈를 결국 마지막 직업으로 맞이하고 말았다. 비단 나뿐만은 아니라 현재 대다수 직장인들의 고뇌일 거라 생각된다. 삶의 실상은 이렇게 너무나 어둡고 축축하다.


더 이상 직장에 대하여 심사숙고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민해서 해답이 없는 고민은 하지 말아야 할 고민이다. 과학이 인류의 6%만을 밝혀 냈으니, 인생에 풀 수 없는 문제는 94%이다.그것은 어쩌면 운명, 숙명과도 같은 것으로 하루 세끼 ,두 끼를 고민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먹듯이, 신이 주신 질문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는, 반복적으로 해야 할 습관 같은 것이 되어야만 한다. 마치 우리에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가족,기질, 장애, 질병처럼 말이다.






우리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며, 글을 쓰고, 취미생활을 하며 직장을 망각하고 싶은 순간을 갖는 것일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와 고통을 위로받지 않고 쌓이면 언젠가는 한계를 넘어서서 터져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글 쓰는 동력은 바로 직장의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해석이 된다.


시간이 갈수록 관을 만들며 조금은 이제 이성적으로 변해 갈 것이다. (실은 내 글도 이성이 요구되고 있다) 직장에서는 감정적이면 절대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을 하는 곳이지만 감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내 감정을 컨트롤하며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 예민한 성향도 누그러 뜨리려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들을 이제 해결해야 할 시간이 온 듯하다. 이 숙제만은 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피하기만 했던 인내하기, 예민하지 않기, 온유하기이다. 유독 이 직업에서 화가 많아지고, 예민해졌으며, 인내하지 못하고 지냈다.


직업은 이렇게 연단하며 깊어지게 한다. 현실이 힘들지 않았으면 꿈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인격을 조금이라도 갖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직업에 대하여 전업작가로 성장할때 까지가 된 이상 긍정적인 곳을 바라봐야 행복해 질 대안이 나올 수 있다. 긍정적인 것들을 세어본다. 장애와 질병과 가난이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하지는 못한다.우선 전업작가 될 수 있는 희망이 나에게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직업이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직업이어서 사유의 영역이 넓어지며, 인격을 연단하여 품성을 높이는 곳이다. 사람과 일을 하기 때문에 심리와 인생의 연륜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지상최대의 관건인 스트레스를 잘 컨트롤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숙제이다.

스트레스는 결과에 대해서도 내가 좌지우지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인간은 결과를 컨트롤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것뿐이다.


내 뜻대로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욕구를 내려놓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 좀 더 의식을 확장하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은 일상적아고 소소한 자유외에 없다. 세상은 공동체의 사회적 힘의 원리로 움직일 뿐 인의 사적 의지로 진행되지 않는다. 일어나는 예기치 않는 많은 상황과 변수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즉 여기서 철저히 감정이 빠진 이성적인 성향이 써져야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감정컨트롤의 절제의 영역이다.






작가적 관점에서 보면 이 상황도 크게 나쁜 것만도 아니다. 단지 내가 원하는 환경은 편하고자 하는 환경일 뿐이며 이미 경험하였지만 편안한 환경에서는 글이 잘 써지지 않을뿐더러 사유의 영역이 깊어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며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동감하며 위로하며 인생의 민낯을 파헤치며, 나름대로의 대안으로 나름대로의 철학을 내놓을 뿐이다.


전업작가가 되고 싶은 간절함은, 하고 싶지 않은 지금의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글을 쓰며 살고 싶은 직장 해방 욕구 때문이며, 그것은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즐겁고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아... 작가가 되자. 그것도 직업이 작가가 되자.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열심히 고군분투하여 전업작가가 되자고 다짐할 수 밖에 없다. 훗날엔 적성에 맞지 않았던 일이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작가가 되기 위해 지난 시절이 험악하였노라고 위안하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