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유발자는 없다

by miel





악의적으로 행하여 나에게 해한 사람은 실상 흔하지 않다. 그러나 살면서 매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결국은 삶의 방식까지 바꾸게 되는 그야말로 스트레스는 인생에서 가장 어쩌지 못하고 꼼짝 못 하는 정신적 고통이다.


도대체 스트레스는 무엇인가. 내가 갖는 스트레스는 합당한 것인가. 어떤 질투와 의미 없는 것들로 인해 놀아나고 있지는 않는가. 이 스트레스가 나에게 주는 효율은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물론 스트레스를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의 본질을 알게 되면 잘못된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으로 인한 스트레스일 수도 있으므로 최소한의 스트레스로 줄이자는 생각이었다.






국어사전에 등록된 스트레스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긴장 상태,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심장병, 위궤양, 고혈압 따위의 신체적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면증, 신경증, 우울증 따위의 심리적 부작용을 나타내기도 하며, 물체가 외부 힘의 작용에 저항하여 원형을 지키려는 힘등이었다.


스트레스는 일정정도의 성취를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아의 목표와 예상했던 방향과 어긋나거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 느끼는 이질감과 실망감이 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일정정도의 성취는 어떤 것인가. 직장에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일정구간의 청소나 8시간 안에 주어진 강의나 어떤 제품의 부품을 조립하거나, 프로그램 실행이 잘되는 것을 관리하거나, 주어진 시간 안에 나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으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이 목표는 생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항력이다.






그러면 불가항력에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태어나 살아가는 것처럼 의식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차원이다. 자신에게 가장 알맞고 적당한 스트레스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인생에서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주로 어떤 것들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육체적 노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나, 과도한 정신노동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노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감정이 반응하는 위험을 알리는 일어나는 육체적 통증과 정신적 두통이나, 감정적 절망감이다.


과도한 육체적 노동은 육체의 질병을 가져온다. 또한 과도한 정신, 감정 노동 또한 질병을 유발하여 현대 사회에는 이른바 세명중 한 명이 cancer(암)에 발병된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체력적으로 잘 감당해 내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스트레스를 훨씬 작게 받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단지 왜 어떤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가이다. 정신적, 감정적 노동을 하는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 옆에 동료는 여유 있게 근무를 하고 나보다 훨씬 더 노동시간을 투자하는데 무슨 차이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체력적으로 좋은 동료이다. 또한 나와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매일 새벽기도를 다녀와서 출근하는 동료이다. 체력은 운동을 통해서 좀 더 강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매일 새벽기도는 분명 어제의 감정을 정돈하고 새로운 시작의 희망을 정신과 마음에 충만하게 하고 출근하는 것이리라.


나 역시 집에서 매일 기도를 하고 오는데, 이 차이는 교회를 가고 가지 않고의 차이일까를 생각했다. 또한 그 내용이 아침에는 희망을 갖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고 우울한데 어떻게 긍정적일 수가 있냐고 나도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어제를 망각하는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는 쌓이면 더 위험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를 떠올린다. 목표에 달성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상담할 때와 계약하기로 한 고객이 마음을 바꾸고 연락이 안 될 때, 퇴근시간을 넘어서 예약한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 퇴근 시간을 넘어서 수차레 상담한 고객이 계약을 다시 미뤘을 때 등등이다.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별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참 억울하다. 그러나 마음속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은 원래 맞지 않았다. 부담감을 더 스트레스로 받는 형이기 때문이다. 그냥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성실히 상담을 하는 것이 더 맞는다. 나에게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아마도 빨리 전업작가로 가고 싶어서 최대한 자금을 적립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또한 5시에 퇴근했었던 내가 목표가 생기면서 6시가 넘어서 계속 퇴근하게 되면서 체력적으로 피로가 커졌고 또한 그 대가가 이루어지지 못해서 허망함이 몰려온 것이다. 계속 다시 다시 연락하라고 했던 고객이 계약이 성사되지 않고 끝나버린 하루에 고객에게 화가 났고 퇴근하는 나의 심정은 정말 내가 이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회의감이 다시 몰려왔었다.






그러나 토요일 이 아침 이 과정을 글로 쓰며 아직도 부족하구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세일즈의 특성을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되기를 바라는 유아적 의식이 부끄럽다. 또한 고객의 신중한 생각을 내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생각했으니 얼마나 일방적인 사람인가 말이다.


역지사지를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얼마나 고심하고 고민하고 결정하는 성향인가. 단지 욕심이 이성적 판단을 흐트러트린 것이다. 스트레스의 본질은 욕심이었다. 물론 나의 직업은 스트레스가 가장 많은 직업 중에 하나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으나 현재의 운명의 지침은 이곳을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쩔 것인가. 별 수 없는 것이다. 전업작가가 될 수 있을 때까지 재밌게 즐겁게 잘 사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큰 마법과 같다. 아무리 힘든 일들도 글로 쓰면 생각보다 큰 일이 아니며 감정에서 이성으로 글을 쓰는 순간 전이되어 정돈되고 정리가 된다.


다른 사람의 실적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약을 진행하는 소리가 들리면 순간적으로 조급함이 밀려온다.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상황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또한 스트레스가 나에게 주는 이득은 없다는 결론이다. 단지 하루하루 성실하게 늘 그렇듯이 고객의 돈이 나의 돈인 것처럼 생각하고 상담을 한다면 이 모든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스트레스와 전쟁을 치를 것이다. 여유와 즐거움과 행복을 방해하는 내 안의 적인 스트레스가 얼마나 쓸데없는 그리고 실체 없는 감정인가를 알았으니 말이다. 단지 성실하게만 살아간다면 걱정할 것은 없다. 그러니 오늘을 즐기자. 내일은 성실하게 살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