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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Sep 16. 2023

애정결핍에서 벗어나기




드디어 시원한 바람이 분다. 뜨거운 여름은 치열하게 고뇌하며 흘렀고 이내 나는 어제와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꽉 움켜잡고 있던 무엇을 흘려보냈고 그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으며 정신적 죽음과 맞닿는 듯한 시간이었다. 좀 더 사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의 일상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나의 머릿속과 가슴속은 뜨거운 용광로처럼 매일 데이고 시려왔다.


그렇다. 변화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 온 자신의 무엇을 버리기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내내 사랑받지 못했던 고아 같은 자아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따리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보따리에 묶여서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은 영영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성장할 수 없는 것이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니었다. 성장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도 가엽고 슬펐다고나 할까. 그렇듯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너무나 인색하여서 또한 누군가에 투영되는 자신의 모습에 나는 또 그렇게 인색하고 싫어졌었다. 마치 윤동주의 자화상처럼 말이다.






고백하자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변혁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부모나 가정에서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지금으로서는 금쪽 상담소에서 나올 만한 사건들이 아직 개발도상국일 때는 비일비재했던 일이다. 그러니 지금의 세대와 세대 차이가 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게다가 지극히 감성적인 나에게는 부모님의 따뜻한 위로가 없는 지적들은 늘 사랑받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부모님들은 어떠한가. 열심히 살아야 했던 저소득층에서 자식에게 줄 사랑이 있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이해하는 부모님의 나이가 됐다. 시골에서 태어난 그 아이는 그저 사회시대 속에서 그렇게 자라났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숙제로 남겨지는 것이다. 게다가 감성주의자인 자신과 대화를 통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지방의 환경과 가정 경제 수준은 철학과 지적인 영역의 고민을 나눌 대상이 흔치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개성 또한 너무나 유니크하여 아마도 고독은 숙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과 고독감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연애에도 이성적이거나 타인이라는 객체 의식을 하기보다 타인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감정을 갖기가 비일비재했다. 연애에 있어 가장 문제는 타인을 타인으로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개인주의와는 다른 타인을 위한 배려와 희생이 증명한다.


어쩌면 인생은 뭉뚱그려져 있는 인생 영역들의 모순들 속에서 적절한 접점들을 찾아나가는 작업은 아닐지 하고 생각이 든다. 홀로 행복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타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누군가의 말은 사실이다. 물론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말이다. 아... 인생이 말대로 된다면 무엇이 힘들까.


홀로 충분히 행복하고 싶어 5년 정도 지냈으나 여전히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의 다반사들을 혼자 해결하고 혼자 삭히고 혼자 잊으며 살아가는 것들이 점점 쌓이고 쌓여서 인생을 왜 살고 있는 것일까의 허무함에 지쳐 그 대안을 작가라는 꿈으로 해결해 나가려 했고, 1년간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글은 더 깊게 침잠하여 들어가는 깊은 내면의 고립감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시 연애를 시작하였으나 중년의 연애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아니 연애는 모르겠지만 사랑은, 그리고 재혼은 말이다. 기적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주위에 연애를 포기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외에 더 중요한 것은 만날 수 있는 타인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가벼울 수 없는 나이와 자신의 철학이 이미 확고 해져버린 시기에 타인과 사랑을 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지금에 와서는 촌스러운 말이 되어 버렸지만 20~30대가 지나면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기란 거의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연애하고 느낀 것은 인간은 사랑을 하며 겨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랑의 힘은 모든 삶의 영역에 에너지를 제공한다. 누군가와 연대는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활동이다. 세상에 있는 부, 명예, 큰집, 좋은 차의 기쁨의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기쁨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연애하면서도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삶이라는 것은 오십의 나이에 내가 목표로 하는 삶이다.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삶은 나의 삶을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자신을 사랑하되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비율은 5 대 5 정도의 비슷한 비율을 가질 때 가장 이상적인 관계가 된다고 본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오래된 보따리는 애정 결핍증이었다. 그것은 불안 애착을 형성하고 행복과 불안이 혼재된 채로 사랑했다고 본다. 사랑을 받을 때 애정 결핍증이 치유되는 것은 진리였다. 그것도 형식적이거나 동정의 사랑이 아닌 자신의 존재성을 있는 그대로 깊게 들여다보고 세상에서 누군가의 고유명사가 되었을 때 상처들이 하나둘씩 치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한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서로가 성장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타인을 더 사랑했던 그 본질은 나의 행복을 위해서였기에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인정하는 객체로써의 사랑이 아닌 나를 사랑해 주는 타인을 자신과 동일시 했던 사랑이었다고 본다.

내가 떠나보낸 보따리 속에는 타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겁 없는 무모함이었다. 자신이 사라져 버린 그래서 타인이 사랑해야 할 내가 없어져 버리게 되는 사랑은 결국 비정상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타인에 대한 사랑은 상대의 상황을 역지사지로 충분히 이해하는 것과 타인이 행복하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는 변화하는 맞추어 가는 과정인 것은 맞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문제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의 조율, 조화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꽤 어렵고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가 필요한 과정이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사느냐고 충분히 생각되기도 하지만 내가 쉽게 살려고 하면 내 주위에 사람들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인간관계가 스트레스가 가장 많고 많은 것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근거가 되는 이유는 그만큼 너무나 어렵고 정답도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교회학교 교사를 기쁨으로 하는 것, 직장에서의 만나는 고객을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 글을 쓸 때 나 자신이 행복한 글을 쓰는 것, 여전히 치열한 고민으로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은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해서도, 타인만을 사랑할때도 행복하지 않다.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사랑할때 가능할 것이다. 물론 무수한 많은 문제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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