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관계인지의 여부이다. 대화가 통한다면 관계를 지속시켜 가고 발전해 가고자 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인간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답답함이라는 속성에 의해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는 동력이 소멸하고 만다.
어찌 보면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속성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관계를 통하여 정신과 영혼을 교감하는 만족이나 그 이상의 기쁨으로 삶에서의 존재감을 자각한다. 그래서 혼자서 고립된 사람은 살아갈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고독감을 느끼고 극에 달하면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만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나와 똑같은 생각이 있는 사람을 말하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수입을 위해 혹은 자기 관심사나 전공, 전문성이 동일한 사람들이 모여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조직이 사회이다. 이러한 관점은 관심사가 같은 이성적인 관점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동료에게 상사에게 대화가 통한다는 생각을 가지진 않는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더욱더 깊은 내면의 교감을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의 비슷한 궤도를 말하는 것이 대화가 통한다는 것을 말한다. 진실하고 순수한 관계를 지향하는 성향을 보이는 사람은 그러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동질감을 느낀다. 삶의 목적이 있는 사람과 삶의 목적이 없는 사람과 대화하는 상상은 어떨가.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과 살아가는 데로 살아가는 사람의 대화는 통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대화가 모두 통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환상이다. 상대의 사고방식이 나와 비슷한가 비슷하지 않은가가 오히려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는 사람의 기준이라고 보는 것은 합리적이다. 좀 더 분석해 보면 궤도는 비슷하지만, 다른 궤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머리카락 먼저 감고 샤워를 하는 사람이 있고 샤워하고 머리카락을 마지막에 감는 사람이 있고, 밥을 먹을 때 국물이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삶에 관심사가 물질에 있는가 내면에 있는가도 중요한 차이이다. 가치관의 차이이다. 물질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정신 내면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종교나 정치에 대한 차이도 중요하다. 종교는 어떠한가. 가치관이 전혀 다르다.
세상에 신이라는 존재가 유무의 입장은 완전한 차이이다. 신이라는 존재가 모든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것과 세상은 물질의 우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이다. 그런데 이런 차이도 극복하는 관계도 있다. 차이를 이겨내는 관계유지의 비결은 무엇일까.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면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부부가 되고 연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데도 살아가는 기성세대의 우리 부모님들의 대부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걸까. 그것은 서로 간의 감정이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이 관계의 주요 요소이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는다는 반증이다.
기성세대의 부모님들은 완전히 남처럼 원수처럼 살아가는 부부관계가 있으며, 서로 너무 달라도 잘 살아가고 있는 부부도 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데도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에 대한 인정이다. 오랜 관계를 유지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소회를 나누고는 한다.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미국을 예로 들면 다른 관점, 다른 가치관, 다른 목적에 대하여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 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사람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편향되지 않는 장점을 가지며 발전해 나가는 관계를 갖는 특성을 갖는다.
인생을 살면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 왔던 시간이었지만 현재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갈 것인가가 화두가 되고 있다. 관계에 대한 자신이 원하는 욕심을 일부분 내려놓고 나와 타인의 50%의 관계의 지분의 선을 지키며 타인의 50%를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나의 50%를 선을 지키는 것이다.
서로 하나의 어떤 것에 대하여 동일한 합의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공유 그 자체가 중요하며 서로의 생각이 충돌하지 않도록 합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인간관계에서는 불평, 불만, 부정적인 대화를 지속적으로 하는 성향을 가진 타인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나 역시 그러한 단계에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깨닫게 되면서 조심하게 되기 시작했고 그런 마음을 느끼면 없애려고 노력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타인으로 인해 우리는 성장하고 더 좋은 인격으로 나아간다.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훨씬 더 관용적이다. 사회생활의 부침속에서 깨닫게 된것은 애초에 기대감이라는 것이 높지 않다. 그렇기에 한 두가지의 대화만 통하더라도 사회적 관계가 갖고 있는 공통의 목적으로 인해 유지가 된다. 그리고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생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성 관계에서는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좀 더 감성적인 영역이 주관한다. 이성적인 매력이라는 요소도 중요한 부분이기에 대화가 통한다고 느끼더라도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 이성 관계는 상대적으로 기대치가 매우 높다. 자신이 생각하는 관점에서 최고를 만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는 상대를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감성과 가치관, 목적, 사고방식, 생활방식, 취미 등등 너무 많은 것이 맞아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를 객관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다.
또한 내가 원하는 만큼 나도 그런 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관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은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는 것이 가치관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성 교제는 결혼이라는 현실적 관계를 지향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요한 관점이다.
행복한 인생의 기본인 행복한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타인의 50% 지분을 관계에 있어서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타인에게 나의 50% 지분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공유, 교감하는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 상대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관점이다. 즉 타인은 타인이고 나는 나다는 객체 인정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앞으로 삶의 목적은 좀 더 다양한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성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평화롭게 하며 사고방식의 지평을 넓힌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타인은 내가 아닌 타인이라는 정확한 인식이 중요하다. 어떤 관계도 타인이 나일 수 없고 타인이 나여서는 안 된다. 사고방식이 가치관이 목적이 완전히 다른 타인을, 독립적으로 서로 다른 인격체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인정하는 영역의 폭이 넓어질 수록 깊어질 수록 더욱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