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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Oct 08. 2023

happiness in disaster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라는 의미는 100%의 완전한 것이지 않는다. 행복한 순간에도 2%의 어떤 걱정이 있는 순간이다. 어떤 순간의 행복에도 다음 단계에 해나가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성공에는 성공을 유지하는 책임이 따르고 결혼은 결혼생활을 잘 유지 시키는 책임이 따르며 연애를 시작할때도 그때부터 관계를 잘 유지하는 책임이라는 고민이 따르고 걱정이 따른다. 그렇기에 행복이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순간의 감격과 환희의 순간으로 생각하자면 인생의 총 분량에 비해 결단코 많을 수 없다.



행복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로 한 것은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만, 불행한 것  같지도 않은 데 행복하지도 않은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어떤 일이 잘 이루어 지면 다음 단계를 준비하느라 성취감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지내 온 느낌도 있다. 그것은 또한 아직 내게 남아있는 성과주의식 의식구조가 아직 본능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매출이 다시 손실이 발생한 사건이 생겼을 때 몇 달간 실적이 좋았기에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으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서의 결론을 깨끗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쉽게 변하지 않는 자신에게 매우 실망스러웠다.



매번 다짐하고 결단하지만 어느샌가 다시 원상 복귀된 나를 보면서 심각하게 복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과정을 통하여 얻게 된 중요하고 소중한 결론을 얻은 것도 있다. 관계에 있어서 조언이나 평가가 필요하지도 않을까 했던 고민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정리되었다는 것이다. 절대로 상대가 감정이 다운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말이다.






사람의 욕망과 초연함은 언제나 대치 국면이다. 열심히 한 것에 대한 결과에 대한 미련이 낳은 미련이었다. 왜 결과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것일까?  또 힘든 과정에서 왜 감정이 다친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표현해 버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다운시켜 버리는 걸까. 아마도 너무 힘든 상황이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사고할 물리적, 심적 여유가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약간 에너지가 고갈된 지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하고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며 보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한 달을 새롭게 스타트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신력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몇 개의 채널을 보았다. 유현준 건축가와 김주환 교수의 정신력 정비와 트렌드 동향과 박영선 원로 목사님이 강해설교와 기도를 통해 명상까지 하며 온전히 휴식하자 마음이 조금 회복이 되었다.






지금처럼 사건이나 문제로 인해서 문제에 휘둘렸을 때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어느새 좁아진 시야가 넓혀지고 개방적 사고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 지금 나는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여행을 가기도 하고, 맛집에 가기도 하며, 책을 읽기도 하며, 휴일의 모든 시간을 중년의 여성이 쉽게 살 수 없는 원하는 시간으로 살고 있다.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고 얼마 전 겪었던 실연의 상처마저도 잘 고민하고 평가했으며 최상의 컨디션을 회복하면서 경험이 연륜이 되어 성숙해지고 여유로워진 느끼면서 더욱 행복감을 느낀다. 삶은 적어도 이전보다도 더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이성적 성향이 더  높아졌으며 인생의 깊이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은 이런 것으로 생각한다. 노력을 통한 혹은 시련을 통한 성숙해진 스스로를 발견하는 그리고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다시는 후퇴하지 않을 성장한 인생을 직감하는 시간을 말이다. 나는 정말로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다시는 없어지게 되었고, 감정을 절제하는 힘이 세졌다는 것을 느낀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시간이 낭비되지 않는 경험 말이다. 경험이 실패였다면 더욱 수많은 인격의 성숙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실패만 하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 실패는 결국 성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숙은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게 한다.






하만의 9가지 행복과 1가지 불행을 성경강해에서 들었던 기억은 정말로 평생에 잊히지 않을 설교였다. 에스더라는 성서에 나오는 하만은 에스더의 외삼촌인 모르드개가 꽤 높은 위치에 있는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수를 결심하고 급기야 그 복수심은 유대인 멸살로 계획이 진행되었다. 유대인의 말살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미스터리이다.



하만은 9가지 행복을 누렸지만 1가지 불행을 행복으로 만들기 위해 한 민족을 멸절시키려 하다가 자신이 죽음을 맞게 된다는 내용이다. 유대인의 부림절은 이때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만든 기념일이다.

한 가지 불행만 자신이 모른척했거나 그럴 수도 있지라며 이해했거나 그냥 허허 웃으며 지나갔거나 자신을 돌아보는 겸허함이 있었다면 그는 계속 일생을 호의호식하며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는 것이다.






행복은 얼마나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냐에 따라 행복의 만족감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며칠간 좀 가볍고 유쾌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건 삶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여유 있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걱정이 있고 사건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걱정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위기의식이 있기 때문에 준비하고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능해진 것은 걱정이나 불안이 어느 정도의 선을 넘어선 것 같으면 무조건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진단 한다는 것이다.



선을 넘어섰다는 기준은 하루가 지나는 것을 말한다. 고통과 고민은 대부분 하루가 넘어가지 않는 것이 나의 룰이다. 깊은 고민을 하더라고 하루 정도는 감정이 들어있는 고민으로 시작하지만, 하루가 넘어 다음 날 아침이 되며 이성적으로 고민을 들여보기 위해 모든 방법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한때 12년이 다 되어 가는 교회학교 교사가 의무감으로 피곤하다고 느끼던 시기가 있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변화된 것들을 돌아보았다.

분명 변화와 회복의 역사는 교회학교가 분기점이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권태에 의해 의무감만 가진 시간이었던 것을 느꼈으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고 가르치기에 합당한 선생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성장하였다. 아이들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노력하다가 성서읽기 30 독이 넘어갔다.






실제로 교회학교에서 헌신이라는 것은 키와 노트북을 받아 교육관 문을 열고 반 명찰을 세우고 의자를 정리하고 기도하고 가르칠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결석한 선생님 반의 공과 공부를 준비하는 것이다. 크고 작은 회의가 있기도 하지만 직장에서 하는 일들에 비하면 정말 너무나 쉽고 가벼운 일들이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분석하다 보니 쉬운 일들일 뿐만 아니라 즐거운 일이었다.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느끼지 못하고 보냈다는 깨달음이 일었고, 지금은 교회학교에 나가는 시간이 즐거운 시간으로 바뀌었다. 이 경험으로 인해 어떤 고민이 있으면 그 고민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문제의 원인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행복은 항상 존재한다. 단지 관점이 너무 부정적인 것에 몰입되어 있어 행복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어떤 목사님은 매일 감사 일기를 써보라고 권하시기도 했다. 감사한 것들을 생각하면 감사한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결핍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루어진 지금이 감사하고 행복해진다.



한 두개의 고민이 없지 않지만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그리고 한두 개의 고민은 평생 있을 예정이란 것을 확신한다. 그럼에도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 갈 것같다는 직감이 든다.

지금처럼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관념들과 싸워 승리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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