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 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상처이다. 그리고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처의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처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아주 어렸을 때 갑자기 맞는 주사처럼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고통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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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상처로 인한 고통이나 물질적인 상실로 인한 혹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으로 인한 상처나 감정으로 인한 상처들.. 등등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받는 상처들은 얼마나 많은가 쉽게 오늘 하루만 우리가 받은 미세한 상처와 크고 작은 상처들은 매일매일 겪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 상처를 더 이상 겪지 않기 위해 기대를 하지 않게 되거나 모험이나 도전하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어른이라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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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상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느껴지는 정도가 다르기도 하다. 예민한 성향의 사람은 더욱 상처의 타격감이 크고 오래가게 되고 상처를 컨트롤하는 정신의 차원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느냐에 따라 고통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 다가오는 어떤 트러블이라고 하는 자신의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것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상황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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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언급했듯이 상실과 기대로 인한 결과이다. 우리의 현실과 상황은 우리의 의지와 연관되어 있지만 절대적인 인과관계를 갖지 않는다. 어떤 상황이 자기 삶에 들어올지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오는 시간이며 내일이다. 바로 '우연히' 라는 상황에 대한 인식하고 있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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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는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우리의 삶 속에서 미래에는 1% 정도의 행복이라는 행운과 99% 지겨운 일상의 반복과 불행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일생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긍정적인 관점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인식의 관점이 아니라 단 1%의 희망을 태풍의 눈처럼 핵심으로 인식하고 다른 모든 상황이 1%의 행운이라는 행복이 될 수 있도록 좌표를 가지고 꾸준히 전진하는 자세를 가진 관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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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객관적인 관점을 갖고 사는 것과 긍정적인 관점을 갖고 사는 것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관점은 긍정적인 관점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인간은 이성만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감정적인 동물이며 오히려 동물적인 감각이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하는 의외성을 가진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감정을 기분 좋은 희망의 상태로 놓았을 때 도전과 노력의 에너지가 증폭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계과 인간의 차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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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물질적 상실을 겪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회복될 미래 상황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고 나의 계획은 아예 경제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었다. 포기하고 사는 것은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더는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 당시 상황은 포기를 했음에도 현실은 한 달의 수입보다 한 달의 생활비와 부채 상황이 훨씬 높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처를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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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됐을 때 가장 유일한 방법은 가능한 한 물질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이었다. 고민해봤자 해결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그 절망을 계속 느끼는 상태인 셈이며 그것은 상처의 반복일 뿐이었다. 견디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던 바닥을 친 시기였는데 그런 시기는 절망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그때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신을 찾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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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희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절망은 어떠한 에너지도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인간은 결코 오랫동안 들어줄 수 없는 절망과 고통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었고 적어도 속은 후련했고 재충전이 되었고 다시 조금은 다음날을 시작할 수 있는 조그마한 에너지가 일어나곤 했다. 그 에너지로 근근이 살아가며 그 시간을 견디고 지금에 와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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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은 어떤 상처들을 경험할 때 그때의 상처와 비교하곤 한다. 아주 좋은 방법이다. 지금의 상처들은 그때의 상처들에 비하면 아주 낭만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고 경험이 쌓이고 연륜을 통하여 지혜가 생기면 상처들을 예감하고 피하기도 하고 또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 관점을 전환하기도 하면서 자기 삶이 상처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못하게 면역체계를 형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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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떤 상처든 하루가 유효기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상처라는 상황을 제어하는 힘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살면서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상처가 더 이상의 상처가 아닐 정도로 마인드 셋을 바꾸는 역량갖추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인간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나 자신의 질병, 사고 등등 감당하기 버거운 상처들을 누구나 받도록 예정되어 있다. 누구든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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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어쩌면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의 노력 일환이 아닐지 하는 생각을 한다. 영혼이 구원되었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더는 두려운 것이 아닌 관점으로 전환됨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구원된다는 데 일주일에 한두 시간이야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시황이 영생을 위하여 불로초를 찾아 헤맨 정도의 노력보다 더한 것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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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교수는 외계인과 귀신에 대하여 과학은 모른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영혼의 존재를 묻는다면 많은 고민과 묵상과 공부 속에서 영혼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하고 위대한 특성이며 볼 수 없는 영역의 부분이라는 것이다. 영혼이 있다면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 영혼이 죽을 수도 있고 죽지 않을 수 있는 두 가지의 경우가 존재하고 내 삶이 나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시기에 성서의 말씀들이 하나하나 회복시켜 가던 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천국을 믿는 이유이다. 실제로 평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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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욕망이라는 전차로 운영되고 있다. 그것의 결국은 파괴라는 결과를 낳는 필연적 과정이다. 그래서 화성을 새로운 제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이 파괴하지 않을 방법은 공생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공생과 역행한다. 사회적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안정시키는 과정 이상 갈 수 없다. 인간의 공생이라는 휴먼주의는 욕망이라는 자본주의의 파괴력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아무도 제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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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도 결국 가진 것을 잃지 않고 싶은 마음과 더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발생한다. 나 역시 이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지 내가 지금 가진 상처가 정당한가 정당하지 못한가를 반복적으로 되뇌면서 겨우겨우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며 살 뿐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남김으로 상처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강 건너 불구경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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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망하면 상처는 더 이상 치명적이기 쉽지 않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내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그러나 살아보니 인생이 걸린 순간은 다시 찾아온다. 단 한번에 인생이 끝장나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단지 두 번 세 번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너무 싫은 나머지 한 번에 끝내고 싶은 나의 귀차니즘이 있는 것이다. 나는 인생을 즐기고 있는가... 즐길 수 있는 시기에 와 있는 것 같다는 감히 건방진 짐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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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대로 안 되더라도 크게 상관없고 상대의 생각이 나와 다를 것이라는 전제로 인생을 살아가며 하나의 결론이 나오면 다시 새로운 과정이 시작된다는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인생은 그렇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 인생은 결코 성실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리이다. 단 당신의 욕망에 비하여 기대에 못미칠 뿐이다. 상처들은 정말 진심으로 연륜이 되어 지혜가 된다. 점점 실수와 후회가 줄어들게 되면서 나이가 들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재미있어지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