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크는 아이들
시간의 속도가 늘 일정한 것은 아니다. 수능시험 날이 가까워질수록 하루하루가 눈썹을 휘날리며 점점 빨리 달려간다.
작은조카가 9월 중순부터 슬슬 공부를 놓더니 10월 말쯤에는 학교 가는 것도 작파하고 제 방에 들어앉았다. 하루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애쓰면서 사는지 모르겠다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의미없이 고통스럽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 않느냐며, 이모는 왜 사냐고 울면서 물었다. 불똥이 애먼 내게로 튀었다. 죽는 게 정말 나은가, 나는 왜 살까, 음……, 죽지 못해 사나? 가끔은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리 말할 수는 없지.
일단, 죽어본 적이 없으니 죽는 것과 사는 것 중 무엇이 나은지 비교할 수 없지 않겠어? 이모는 '나'를 찾고 '나' 사랑하고, 마음의 평화를 느껴보고 싶어 살아. 그러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꽃을 가꾸는 일이 나름 할 만해. 의미가 삶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해. 불완전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크고 작은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의 참모습이지. 하지만 내게는 이성이 있어 삶을 궁구할 수 있으니까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 살 수는 있어.
잠시 가만히 있더니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집안의 소음이 귀에 거슬려 산으로 들어가고 싶다네. 공부가 턱없이 부족한데 더이상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대학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얼마나 아슬아슬하겠나. 입시를 떠나 아이의 마음이 편해지기를 바라는 가족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살금거리며 며칠을 지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마음이 하염없이 가라앉았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조카들의 고통을 바라볼 때는 스스로 죽어버린 동생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워진다. 이별을 견디며, 살아남는 것에 모든 것을 써버린 아이들에게는 성장의 여력이 없다. 더욱이 제 엄마가 그리 갔으니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라는 말이 귀에 들리기나 할까.
올해 입시는 시험을 보러만 가도 다행이고, 이런 상태로는 재수를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판단에 이르자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어도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을 덮어둘 가장 쉬운 선택인 것은 맞지 않은가. 기다리던 평안이 무한히 지연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나의 심장 위에 커다란 돌을 올려 놓았다.
다행히 아이는 일주일 정도 우울하게 있다가 다시 밥을 달라하고 일어나 앉아 영화라도 보기 시작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을 가고, 느리게 가거나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네가 존재하는 모든 시간이 너의 빛나는 순간이라는 것을 다시는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나를 다독였다.
수능을 이틀 남기고 이 녀석이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욘석이 정말 링에 오르지도 않고 수건을 던져버렸다. 하!!
"올해 1월부터 공부 빡세게 한 건 정말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수능시험을 열심히 보는 것이야말로 올해 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부다, 점수와 상관없이 올해 시험을 성의껏 봐야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안 그러면 내년 이맘 때쯤에는 지금보다 더 쫄릴 거다." 등등…….
처음으로 강하게, 그리고 열심히 떠들고 나서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속이 부글거렸다. 힘 조절에 실패한 손에서 정수기가 깨져나가고, 순간접착제의 뚜껑을 덮지 않고 두었다가 싱크대 작업대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여기가 끝은 아니며 길은 많을 거라 되뇌이며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지만 마른 땅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나도 모르게 몸이 파다닥거렸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시험 전날 밤, 제 방에 웅크려 어둠과 뒤척이는 것을 그만 두고 나와 도시락을 싸달라고 말했다. 이튿 날 아침 수험생 아닌 사람처럼 느즈막이 일어나 도시락과 주전부리를 챙겨 시험을 보러갔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달려가는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베란다에 서서 눈으로 배웅했다. 옴마나, 수저를 안 챙겨 보냈닷!!!
시험이 끝날 때쯤 고사장으로 마중을 갔다. 4년 전 큰조카의 입시 때와 달리 학교 앞은 한산했다. 아무래도 사내 녀석들한테는 신경을 덜 쓰는 모양이다. 녀석이 친구랑 얘기하며 웃으면서 나오다 나를 보고는 얼굴이 빨개져서 퉁명스럽게 한 마디 했다.
"뭐하러 왔어."
"너 쓸쓸할까봐."
"......."
"숟가락 없어서 어떻게 했어?"
"친구 거 빌려 먹었지. 다음에는 국 싸줘. 밥이 안 넘어가.ㅋㅋ"
타고 갔던 자건거를 끌고 집까지 오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욘석이 밖에서 만나면 아는 척 안 하고 지날 때가 많아서 그냥 집에서 기다리려고 했다. 아무리 아이라도 거절이 반복되면 나도 모르게 위축된다. 외면 당해도 내가 할 건 해야지 싶어 마중을 나갔는데, 가기를 잘했다.
2022년 11월 20일
2년 전 이야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 잘난 조카 녀석은 지금 대학교 2학년이다. 철학 공부를 좋아하는 검박한 청년이 되어 경건하게 잘 살고 있다.
한동안 나는 역경을 이겨내는 보호자 노릇에 혼신을 다했다. 힘에 겨운 날은 이 녀석이 늙어가는 제 이모를 롤로코스터에 태워 제대로 멕인다고 넋두리했지만, 생의 근본을 잃은 아이들이 영영 자라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의 조바심은 쓸데없는 것들이었다. 엄마를 잃고 빛이 사라진 세상에서 녀석들은 어둠을 헤치며 제 길을 알아서 찾아갔다. 그리고 생의 중요한 관문을 제 힘으로 무사히 통과했다. 따순 밥을 해주고 옷을 빨아 입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는데, 나는 그것 말고도 뭔가 대단한 것을 아이한테 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만큼은 내 인생도 쓸모가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것 역시 어리석은 생각이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