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엄마여서 고마워요
엄마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이맘때쯤이었다. 뜨거운 여름을 정말 치열하게 보냈던 시간들,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데 까마득한 기억으로 다가온다.
뜨거운 여름,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식에 그 해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겠지만, 하필이면 짠하고 고달픈 세월을 보낸 엄마에게 그토록 힘든 시간을 주시는지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했던 여름날이었다. 놀란 가슴으로 뜨거운 한 계절을 정신없이 보내고 찬바람 부는 계절을 맞이했을 때는 눈앞에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다가올 일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는데 힘써야 했다.
엄마에게 찾아온 위암, 그래 수술하면 되지! 희망을 안고 수술할 수 있게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암덩어리를 줄이고자 시도했던 여러 차례의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한마디에 또다시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기운이 빠졌다.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게 되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하루가 지나는 만큼 지쳐가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만큼 포기하는 마음의 비중이 커져갔다.
그럼에도, 엄마를 보면 지친 모습을 보일 수도 포기할 수도, 항암치료가 효과 없다는 사실을 전달할 수도 없었다. 희망 없는 날들이 계속되어도 좋지 않은 상태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엄마는 늘 내일을 말씀하셨다.
"항암 주사 맞고 얼른 집에 가자"
"집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한다"
"내년 농사는 어떻게 해야겠다"
당장 오늘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일의 일을 계획하시는 엄마를 바라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렇게 내일을 계획하며 뜨거운 한 계절을 보내고 찬바람 부는 가을이 오고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만큼 시간이 흘렀다. 항암치료로 힘든 병원생활을 하게 되어 김장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는데, 잠시 퇴원해서 집으로 갔을 때, 동네분들이 모여 엄마의 농사가 헛되지 않게 수확하고 김장까지 해주어서 얼마나 감사했던지, 엄마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 걷어붙이고 나서서 내 일처럼 해 준 동네분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이 밀려왔다.
농사일을 야무지게 해내시는 엄마는 사람 관계도 야무지고 단단하게 맺으셨나 보다. 그것 또한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웠다. 효과는 없어도 힘든 항암치료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엄마에게 맞는 면역항암제를 찾아서 치료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처음에는 효과가 없어서 실망스러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되는 치료 덕분에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암의 크기가 조금씩 작아지는 효과를 보이면서 위를 꽉 채우고 있는 암덩어리 때문에 음식이 내려가지 못해 삽입했던 스텐트를 제거하고도 음식 섭취가 가능해졌고, 먹을 수 있게 되니 살도 조금씩 붙기 시작하고 수혈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좋아졌다.
몸에 맞는 면역항암제 덕분으로 입원하지 않아도 되었고, 2주에 한 번씩 통원치료로 대신하게 되었다. 두 달에 한 번씩 확인하는 치료 결과에서 희망이 보였다. 수술을 할 수는 없어도 크기가 작아지고 소화를 시킬 수 있을 만큼 위장운동이 가능해졌고 음식 섭취가 한결 수월해졌다.
긴 시간, 정말 힘들었을 시간이었음에도 엄마는 힘들다, 죽겠다, 그만하자는 소리는 한 번도 입밖에 내지 않으셨다. 먹지 못해 안쓰러울 정도로 살이 빠진 모습에도 환자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씩씩했다. 오히려 보는 자식들이 힘들어하고 걱정하고 조마조마하고 안절부절못한 마음으로 보낸 시간들이었다. 씩씩하게 보낸 1년 반의 시간, 또다시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엄마가 해주는 김장을 먹을 수 있을까 싶었던 작년 겨울이 생각난다. 올해 김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가 준비하셨다. 내려가겠노라 했는데도, 이미 내려오기도 전에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으시고 기다리셨다.
억척스러울 만큼 일을 하고 성질 급하게 미리미리 준비하고 모든 것이 당신 뜻대로 생각한 대로 진행되어야 함을 알기에 이제는 말리지도, 걱정하지도 않는다.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는 일은 엄마 힘의 원천이므로.
엄마 손맛으로 만든 김치가 아주 맛있게 잘 버무려졌다. 김치에 밥 한 공기 뚝딱 하시며, "이렇게 밥을 먹게 해 주었으니 한 병은 그렇고, 참기름 두병 가져가서 밥 비벼 잡수라고 해야겠다" 하신다. 당신이 농사지은 참기름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으신가 보다. 김장을 끝내며 다음 진료날짜를 헤아리시고 직접 짠 고소함 가득한 참기름 두병을 가지고 집을 나설 생각 하시며 미소 짓던 엄마의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엄마는 지금도 2주에 한 번씩 항암치료를 받으시며 예전의 생활을 똑같이 하신다. 농사일을 하시며 자식들 입에 들어갈 것을 가꾸고 챙기며 부지런하고 씩씩하게 일상을 이어가신다. 절망 속에서도 절망을 부르지 않고, 늘 희망을 말씀하시는 엄마가 존경스럽다. 뜨거운 여름은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 되었다. 장마가 계속되어 쳐진 날들이었는데,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늘이 반갑다. 여름날 뜨거운 햇살만큼, 엄마의 내일도 강하고 환하게 밝았으면 좋겠다. 씩씩한 엄마여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