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단다. 한 2년 사이에 얼굴이 팍 늙어버린 거 같다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친구가 안타까워한다. 많은 일이 있긴 했지. 무슨 일이 없었다 해도 중년의 나이에 2년이란 시간은 얼굴이 달라질 만큼 늙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는 것 같다. 사춘기로 인해 청소년기의 변화가 심하듯이, 갱년기를 맞이해야 하는 오춘기로 인해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 얼굴뿐 아니라 신체리듬까지 변화를 겪어야 하니까 말이다.
딸의 얼굴을 보면 정말 예쁘다. 젊음이 주는 발랄한 생기가 느껴지고 탱탱한 피부결이 곱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고맙게도 곱고 뽀얀 피부를 물려받았다. 덕분에 희고 밝은 모습만으로도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자체로 빛이 나는 얼굴이었다. 타고난 피부결 덕분으로 얼굴까지 예쁨을 받았던, 해맑은 얼굴만큼이나 걱정 없이 살았던 그 시절이 유난히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하긴, 젊은 날의 얼굴 치고 예쁘지 않은 얼굴이 있던가.
미혼일 때는 물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정신없이 살아갈 때에도 나이 들어 보인다는 소리보다 어려 보인다 동안이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어쩜 그렇게 피부가 좋냐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심심치 않게 듣는 거 보면 그나마 타고난 피부는 유지하고 있나 보다. 보낸 세월을 증명하듯, 나이만큼 생긴 주름은 환했던 얼굴을 인상마저 칙칙하게 바꾸어 놓았을까..
어느 날 사진 속 얼굴을 보고 유난히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나이 든 얼굴이 나란 말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시 찍어봐도 밉상으로 변해버린 얼굴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모습이 변해버릴 정도로 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에 활력은 찾아볼 수도 없고 즐거움이라고는 모르고 사는 것 같은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때 많이 속상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보면 나이 들수록 여유롭고 예쁘게 인상까지 환하게 변한 친구들을 만날 때가 있다. 신랑을 잘 만났거나 돈이 많거나 가진 게 많다고 그런 얼굴이 나오지는 않을 텐데, 부럽기도 하고 샘나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된다. 중년의 얼굴이 보여주는 것은 나이뿐만이 아니고 살아온 세월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텐데, 난 곱게 태어나서 그토록 억세게 살아왔나 뒤돌아보게 된다.
40대가 되면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고 했던가? 얼굴에 책임져야 할 나이가 훨씬 지나고도 남았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얼굴이 아닐진대, 그 세월을 어찌 보낸 것인지 뒤돌아보지만 어쩌지 못할 시간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씁쓸한 기분만 남는다. 애써 외면하게 되는 나의 모습이다.
예쁜 얼굴 고운 얼굴 밝은 얼굴 지적인 얼굴 생기발랄하고 어려 보이는 얼굴 등등.. 살아가는 모습이 모두 다르듯이 얼굴 모습도 같은 모습이 없다. 사진 속 낯선 내 모습을 대하기 전에는 예전의 모습에서 나이가 좀 들어 보이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거울로 볼 때와 사진으로 봤을 때의 모습은 정말 많이 다르다. 그래서 가끔 찍어보는 셀카는 상처를 남기기 일쑤다.
어느 날 변해버린 내 모습에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그 뒤로 난 사진을 잘 찍지 않게 되었고 찍더라도 뒷모습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청춘을 바쳐 잘 살아낸 세월 속에는 변해버린 얼굴도 함께였다. 세월을 되돌릴 수도 없고 다시 태어날 수도 없다. 언젠가부터 미운 얼굴 대신 뒷모습을 자주 찍으며 그래도 뒷모습은 예쁘네~ 하면서 얼굴 대신 내밀기도 한다.
달덩이 같은 얼굴이라고, 보름달이 떴다고 놀림을 당했던 그 얼굴이 참 예뻤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쁘고 어떤 표정을 지어도 밝아 보이는 모습,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이라는 특권이 주는 이쁨이었겠지만 나이가 좀 들었다고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란 법은 없지 않겠는가, 다시 찾고 싶다.
요즘은 답답함을 주는 마스크가 주름진 얼굴을 감춰준다. 마스크 속에서 난 열심히 웃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예전에 밝게 웃던 모습을 떠올리며, 책임져야 할 내 얼굴로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웃는 연습을 한다. 누가 봐도 밝고 아름다운 얼굴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곱게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