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가지 말았어야 했을까?
입퇴원을 반복하며 보낸 시간이 4년이 넘었다. 그날도 입원치료 후 퇴원한 지 고작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염증수치를 낮추고 기력충전과 음식섭취를 위한 정상적인 컨디션 회복을 위해 3주 동안 힘든 시간을 견뎠다. 암 수술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원인 모를 다양한 질병치료를 반복하느라 심신이 고달픈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고역스러운 모든 순간을 견디고 겨우 퇴원할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고 일주일 후 허리 쪽 피부가 짓물러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욕창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일주일사이에 이렇게 큰 욕창이 생겼는데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니 통증을 느끼지 못할 만큼 감각이 둔해진 것일까? 심각해진 욕창상태를 보고 속상함을 넘어 무서움이 밀려왔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다시 병원에 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 좀 더 진행되면 뼈가 보일 듯이 깊어진 욕창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퇴원하면서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쩌면 좋지?
고민 끝에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침상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므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심각한 욕창으로 인해 가정에서 보살핌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어렵게 입을 뗐으나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하고 고분고분하게 병원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이제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긍하는 모습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듯했고 그 모습은 오히려 정신을 꽉 붙들고 있는 내게서 힘이 쭉 빠지게 했다. 병원 도착 후 평소보다 총기 어린 모습으로 치료 잘 받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욕창 치료 후 다시 괜찮아져서 집으로 올 수 있을 줄 알았다.
다음날 숨을 쉬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고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이렇게 쉽게 이별이라고? 욕창치료하러 갔는데 영원히 이별이라고? 이게 무슨 일이야? 믿을 수가 없었다. 일하던 중에 전화를 받고 두 손이 떨려서 서류를 떨어뜨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3월 말이었다. 활활 타고 있던 화장터 창밖으로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함박눈이 되어 달래주는 것인지, 눈처럼 훨훨 날아 하늘로 가고 있다는 듯이 하염없이 내렸다. 소담스럽게 내리다가 화난 듯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기도 하던 눈은 화장을 마치고 장지로 이동하는 내내 쏟아졌다. 걱정스러울 만큼 많이 내리던 함박눈은 머물 곳에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멈췄다. 흐렸던 하늘은 사방이 정갈해 보일만큼 맑은 햇살을 비추었다.
당신 몸이 아파 본의 아니게 가족을 힘들게 할 때는 지치기도 했다. 하느라고 애쓴 시간이 허사로 돌아갈 때는 지친 마음에 원망이 들기도 했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 형제들이 미워질 때는 마음이 괴롭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이별로 그동안 뭐 했나 허무해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묵직한 아픔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호흡곤란으로 말하기 조차 힘들지만 웃으며 손 흔들어주던, 고맙다고 늘 말씀하시던 아버님과 함께 한 시간은 한동안 자주 되새김질되겠지.
만약, 그때 병원에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절대 가지 않겠다던 병원으로 다시 가게 되면서 삶에 대한 미련을 거둔 것일까? 그렇게 쉽게 삶의 끈을 놓고 떠날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식사 대용 음료를 빨던 그 힘이 아직도 생생하게 내 손끝에 남아있는데. 만날 때마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봄이 되면 꽃구경 가자고 철석같이 약속했는데.
봄날 꽃구경대신 긴 여행을 떠나셨다. 춘삼월에 때아닌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눈송이에 아픔을 담아 뿌리듯 미련 없이 훌훌 털고 떠나셨다. 49제를 지내며 환하게 웃으시던 생전모습을 되새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5월 햇살은 따뜻했고 걱정 말라는 듯 맑고 깨끗한 날씨 덕분에 마음은 편안해졌다.
결혼 후 30년 세월이 흘렀다. 아픈 몸으로 보낸 4년의 시간보다 건강하게 보낸 시간이 훨씬 길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떠올리게 되는 좋았던 시절보다 아픔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보낸 애달픈 일상은 기억 속에 더 오래 머무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