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건강할 때

by 단미

'예약변경 완료되었습니다'메시지를 확인하고 검사일정 변경을 위해 검사예약실로 전화했다.


"내년 6월 12일 외래진료에 맞게 검사일정을 변경하고 싶습니다"

날짜확인을 위해 잠시 대기하라는 안내를 받고 기다렸다.


"내년 6월 12일 외래진료에 맞는 검사일정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미리 확인 후 진료변경했어야 하는데 서둘러 변경하셨네요."

"그럼 어쩌죠? 검사하지 않으면 외래진료는 의미 없을 텐데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픈 것일까? 1년 후까지 내시경 검사일정이 예약되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대학병원 수술날짜 기다리다 죽는다더니,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거 아 웃프다. 어지간하면 한 번 예약한 일정은 그대로 지키며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환자였는데, 이번에는 왜 이리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일까.




예정대로라면 지난주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했어야 했다. 환자에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수면내시경을 진행하지 않는 주치의 처방은 늘 비수면 내시경으로 진행된다. 대장내시경은 생각보다 견딜만하고 지금까지 잘해왔다. 문제는 위내시경이다. 평소에 같은 상황에서도 남들보다 더 비위 상하는 경우가 많아 고역스러울 때가 많은 편이다. 그러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위내시경 기구를 감당하기가 쉬울 리 없다. 내시경을 진행하는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기까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2년 전 예약된 대장내시경과 위내시경일자가 다가옴에 따라 쌓이는 스트레스 지수는 일상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크다. 검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지면서 스트레스 수치도 높아간다.


암진단을 받고 치료 5년이 지나면 내시경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5년째 되는 날 진료일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의사 선생님은 5년이 지나도 완치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고 그 후에도 해마다 계속되는 검사와 진료를 이어가게 했다.


혈변으로 알게 된 대장암 발견시점에서 수시로 진행되었던 대장내시경은 항문과 복부가 터질 것 같은 고통과 두려움을 안겨줬다. 보름에 한번, 한 달에 한번, 6개월에 한 번, 1년에 한 번 그리고 5년이 지난 후에는 2년에 한 번. 그토록 많은 대장내시경을 하면서도 비수면 내시경으로 인해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수치심과 항문의 통증과 복부팽만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어쩌면 내시경의 참기 힘든 고통과 더불어 의사 선생님 태도도 병원을 가기 싫게 만드는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실력이 좋아 수술을 잘하면 뭐 하나 싶다. 물론, 수술을 잘해줘서 건강을 되찾은 것은 크게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진료를 받고 오면 홀가분해져야 하는 마음이 오히려 기분 나쁜 상황이 되고 만다. 환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으니 검사받고 진료받으러 가는 일이 그토록 싫게 만드는 것이다. 담당의사를 바꾸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게 결정하기 어려우니 고민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2년은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며 예약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흘렀다. 예약된 검사일을 확인하며 꼭 해야 하나? 안 하면 안 되나? 정말 하기 싫은데.. 하나마나한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알고 있어서 더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업무적으로 굉장히 바쁘다는 핑계가 있기도 했지만, 결국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예약변경을 하고 말았다.


약속된 날을 어기는 것이 이토록 번거로운 결과를 가져올 줄 모르고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 경솔함을 탓해본다. 하지만, 그토록 싫은 마음으로 검사받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았으니 후회하고 싶지 않다.


스티브잡스는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아파줄 수 없다"라고 했다. 베트남의 유명한 승려 틱낫한은 "몸을 건강히 유지하는 것은 나무와 구름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라고 했다. 누구나 아는 식상한 말이지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아프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바보는 두 번 다시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며 다시 건강한 모습을 찾았으니 모든 것에 감사하며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든 헝클어진 검사일정을 다시 잡아야겠지, 내시경이 죽을 만큼 하기 싫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