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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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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Nov 21. 2020

단미를 소개합니다.

단미 생각, 매거진을 발행하며

최근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그 생각들을 글로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단미 생각' 매거진을 발행합니다.


첫 번째로 쑥스럽지만, 단미를 소개해봅니다.



단미의 어린 시절   

                 

단미는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쭉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가난했지만 추억이 주렁주렁 달려있어서 살아가면서 야금야금 추억을 먹고살 만큼 많은 것들을 안겨주기도 했답니다.  언니와 오빠와 남동생과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았던 철없던 시절은 마냥 즐거운 날들이었지요.


가난한 시골살이는 초등학생일지라도 일손을 도와야 할 만큼 때론 퍽퍽한 생활이기도 했지만, 부뚜막 앞에서 손과 얼굴이 시커멓게 되는 줄도 모르고 맛있는 밤과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었고, 농사가 끝난 겨울이 되면 논바닥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니며 놀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가난했어도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친구들과 우정을 다지며 막연했던 먼 훗날의 미래를 꿈꾸기도 했지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단미의 학창 시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고향에서 다녔습니다. 내성적인듯하면서도 사람을 좋아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주변에는 늘 친구들이 많았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주도적으로 사교적인 성향이 아니었는데도 친구들이 많이 좋아해 주고 함께 해주었던 거 같습니다. 챙겨줬다고나 할까요?


초등학교 때는 늘 단미네 집으로 친구들이 모여들었고, 중학교 때는 단미네 반으로 모였고, 고등학교 때는 단미네 반에서 모여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어울렸던 기억도 납니다.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시절이었네요. 초중고 모두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음에도 마냥 즐거웠던 기억이 더 크게 자리한 것은, 아마도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좋았었기 때문이겠지요.


영원히 변치 말자며 그렇게 잘 어울렸던 친구들은 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는 몇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단미의 직장 생활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 대학 가기는 쉽지 않아서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친구들이 많았으니 특별히 억울하거나 속상하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고, 얼른 돈 벌어 엄마 고생 좀 덜어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환경이 빨리 철들게 한 이유겠지요.


상경하여 무역회사에 취업을 하고 자재부에 배정이 되었는데 수불 정리하는 것이 정말 싫더라고요. 일하며 살펴보니, 무역부는 종일 출장이고 자재부는 수시로 재고 정리하기 바쁘고 경리부는 사무실에서 힘주며 일하더라고요. 사회 초년생 눈에 들어온 경리부가 그렇게 좋아 보였습니다. 부서 이동을 요청했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갈 수가 없었지요.


그러기를 2년, 안 되겠다 싶어서 이직을 결심하고 찾은 곳이 회계 쪽 업무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30년을 회계업무를 하고 있다지요.  나름 보람되고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이었습니다. 아마도, 하고 싶은 일을 했던 것이 장기근속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출산 후, 이직이 있었으나, 전문성을 살린 업종이어서 경력단절 없이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회 초년생 시절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전문분야로 이직을 선택한 것이 아주 잘한 거 같습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후에 대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방송대를 입학하게 됩니다. 지금은 4년 제이지만, 제가 다닐 때는 5년제였는데 저는 방송대를 입학하고 10년 만에 졸업을 했습니다. 중간에 결혼하고 출산하고 직장 생활이 바쁘기도 하고 등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결국 10년 만에 졸업식을 하게 되었지요. 의지의 한국인, 셀프 칭찬합니다. ㅎㅎ


같은 생각으로 공부하고자 만났던 그때 사람들,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답니다. 아주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가고 있어요. 아마도 내향적인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뀐 것은 직장 생활의 영향도 있지만, 방송대를 다니면서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직장 생활과 병행한 방송대 생활은 정말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잊을 수 없는 한 페이지로 남아있습니다.


공부하러 가서 인생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이직한 것만큼이나 방송대 진학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에게는 그 시절이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단미는


여전히 직장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50이 넘어가니 친구들 간에는 능력자로 칭하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렇게들 말하더군요. 능력자 맞나요?


대장암 수술을 하고도 잘 견뎌 냈고, 최근에 안면마비로 고생하고 있지만, 그것도 받아들이며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프면 별생각을 다하게 되는데요, 다행스럽게도 며칠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마음이 정리가 되면 또 깊게 빠져들지 않습니다. 머리 아픈 거 싫어하는 아주 단순한 성격이어서 일단 마음으로 결정을 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훌훌 털어버립니다. 물론, 받아들이고 결정하기까지는 괴롭지만요.


깊게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는 단순한 성격도 저는 마음에 듭니다. 아마도, 험한 세상 살아가기 위해 성격도 그렇게 변한 거 아닌가 싶네요. 한편으론 무던한 거 같으면서도 까칠하기도 한가 봅니다. 가끔은 무섭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는 거 보면.


단순하면서 한 번씩 까칠해지기도 하고, 때론 욱하기도 하면서 사람 좋아하고 산도 좋아하며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단미입니다. 이력서 쓰듯 쓰는 자기소개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지난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되니, 또 나름대로 좋네요. 그 시절의 여러 가지 일들도 생각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생각나고. 그리운 시절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살면서 어려운 일도 만날 테고 힘든 일도 만나겠지요. 그럴지라도 고민 좀 하다가 훌훌 털면서 또 잘 살아가겠지만, 이제부터는 샤방샤방한 꽃길을 걸으며 예쁘게 살아가는 단미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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