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은 나의 친구

지금부터 시~작!

by 미미




"너는 밥을 짱 빨리 먹는다!"


어린 날엔 뭐든지 내세우고 싶으니까, 그때 내 자랑거리는 '빨리 먹기'로 정해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에서 가장 빨리 먹는 아이 타이틀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급하게 먹었다. 밥을 국에 옮겨 섞어 먹고 먹기 싫은 채소는 씹지 않고 삼켰다. 얼른 식판을 싹 비우고 나면 만족감이 찾아왔다. 나는 여전히 빨리 먹는 사람, 그게 내 정체성이었다. 아이들은 말했다, 역시 미미는 빨리 먹네.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급하게 먹는 버릇이 생겼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게 폭식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나는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다. 물론 맛있는 반찬, 소시지, 떡갈비 같은 게 나올 땐 하나 더 줄 수 없냐고 급식 아줌마께 눈을 반짝였지만 한 개 더 받는 거로 만족했다. 오히려 밥을 주걱으로 푼 다음 조금 덜어냈다. 빨리 먹어야 하니까. 얼른 밥을 먹고 나면 피구 공을 들고 운동장에 나갔다. 피구할 자리를 찜꽁해둬야 옆 반 애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피구를 실컷 하고, 피구가 모자라면 교실에서 잡기 놀이를 하다 선생님께 혼나고. 칼로리를 미친 듯이 태웠다. 초등학생이 그러하듯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날뛰었다. 내 몸은 다부진 동시에 말랐다. 건강한 몸이었다. 이건 저학년 때까지 이야기이다.







고학년이 되니 식욕이 마구 당겼다. 성장기라 그랬을 거로 생각한다. 간식을 먹고 밥을 두 배로 먹고 빨리 먹는 버릇까지 추가되니 몸무게가 배로 늘었다. 그래봤자 과체중이었지만 엄마는 도저히 뚱뚱해진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끊임없이 들은 말이 '돼지'였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모 개그 프로그램으로 '나댄다'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말괄량이라는 귀여운 별명에서 '나대는 돼지'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친구들은 튀는 행동을 하는 나를 욕하기 위해 내 몸을 내세웠고 나는 반 공식 돼지가 되었다. 딱히 왕따를 당한 건 아니었고, 그리고 뚱뚱이 아니라 통통에 가까운 나였지만, 엄마도 친구들도 나를 돼지라 불러서 나는 그때부터 내내 돼지였다. 중학교에서도 나는 늘 돼지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늘 내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빼자고 강요했다. 나는 아직 돼지구나, 싶었을 때 학교 소풍을 가게 되었다. 나는 스키니 진에 크롭티를 입고 박물관에 갔다. 친하지 않았던 한 여자애가 나에게 말했다.


"너 진~짜 말랐다."






?, 나 돼지 아니야? 난 줄곧, 내내, 내가 돼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그렇구나. 나 돼지 아니구나. 나 어느 순간 돼지가 아니었구나. 살은 자연스럽게 빠져서 키로 갔구나.


엄마는 나한테 왜 그랬지? 그리고 어린 시절, 난 그냥 과체중이었는데 애들은 나한테 왜 그렇게...

돼지, 돼지, 돼지, 돼지, 돼지.

라고 거렸지? 왜?






얼마 뒤, 난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난 도수가 매우 높은 안경을 껴서 눈이 조막만 해 보였는데 안경을 벗으니, 눈이 배로 커졌다. 그리고 듣게 된 새로운 말은 '예쁘다'였다. 처음 받아보는 호의, 관심, 기뻤다. 재밌었다. 좋은 추억이 쌓임과 동시에, 그때부터 폭식은 은근하게 날 덮쳐오기 시작했다. '먹토'의 방식으로 말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토했다. 예뻐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다. 아이들이 주는 친절이 너무 달콤해서 눈물이 났다. 자주 아프기 시작했고, 가위에도 자주 눌렸다. 그래도 학교에 가면 편했다. 친구들이랑 놀면 즐거웠다. 그런 상태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폭식에 스트레스를 더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연재하면서 조금씩 밝히겠지만, 입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내가 나를 놓으니 먹토는 자연스레 사라지고 그냥 폭식만 남았다. 신나게 먹으니 다시 돼지, 아니, 이제 멧돼지가 아닐까? ㅋㅋ






사실, 지금은 살을 뺄 생각이 없다. 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트레스, 우울증으로 인한 폭식은 아직까진 나에게 구원이다. 폭식 말고는 내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알고 있다, 이건 건강을 망친다. 내가 나를 파괴하는 짓이다. 폭식은 내 친구지만, 서서히 멀어질 때가 왔다고 생각해 에세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시점, 오늘도 폭식했다. 라죽을 두 번을 먹고 파워에이드를 들이켠 다음 낮잠을 2시간 자고 일어나 글을 쓴다. 아직 내 베스트프렌드는 폭식이다. 폭식하고 난 후, 겨우 힘이 나서 글을 쓰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너를 버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너 없인 글 쓰기 시작도 못 하는 내가... 과연 폭식, 너와 멀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