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야끼, 토 할때까지 먹어봤어?
나의 버라이어티한 폭식의 시작은 고등학생 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그놈의 입시, 그놈의 입시! 입시는 정신병이다. 진짜, 정말로. 사람들이 괜히 고3 다시 하고 10억 받을래 그냥 살래? 하고 물었을 때 고민하는 게 아니다. 거기다 나는 악명높은 미대 입시생이었다. 아직도 그런 분위기인가? 미대 입시? 그거 공부 안 해도 되잖아, 부럽다. 놀랍게도, 내가 실제로 들은 이야기다. 아니다! 미대 입시는 공부도 좀 칠 줄 알아야 하는데 거기에다가 그림은 수준급으로 잘 그려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 두 개 다 어설프게 잡으려다 망한 애들도 많았고 아예 한 가지를 붙잡고 하나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애들도 많았다. 나는 어느 쪽이었냐면 어설프게 두 개 다 잡은 케이스. 스트레스? 당연히 최고점. 나는 고3, 그 1년 동안 무려 30킬로가 쪘다. 그 서막의 중점엔 타코야끼, 이 녀석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임신했는지 생각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나는 웃었다. 웃다가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얼마나 미친 사람처럼 한 음식만 찾았으면 엄마가 나더러 임신했나 생각까지 했겠냐고. 배가 아파서 웃은 건지 웃퍼서 웃은 건지. 학교가 마치면 하굣길에 배달의 민족을 켰다. 신속한 배달, 난 그보다 신속한 주문으로, 타코야끼 24알짜리, 오리지널, 매운 거, 치즈 맛, 3통 주세요. 그러면 꼬챙이를 12개 챙겨주신다. 나는 꼬챙이 11개를 꺾어 버리고 앉은 자리에서 와구와구 해치웠다. 예체능은 일찍 하교시키기 때문에 집에는 나 혼자뿐, 아니 고양이들이 있었지. 가스오부시를 보고 달려드는 애들을 밀치면서 나는 짐승처럼 우걱우걱 타코야끼를 먹었다. 뭐라도 쑤셔 넣어야 했다. 뭔가를 쑤셔 넣고, 달고 짠 맛이 뇌를 자극해야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배가 부른 거? 모르겠다. 타코야끼 72알은 내 위장을 늘리기 충분했던 모양이다. 나는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고 학원으로 갔다. 가끔은 타코야끼를 먹다가 울었다. 나는 그때 너무 맛있어서 우나 싶었다. 아, 이 맛이야! 내가, 이 맛을 기다리면서 하교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황홀한 울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심심하면 음식을 찾는다. 말 그대로, 아, 심심하네? 밥이나 먹을까? 이런다. 마음이 허하면 음식을 찾게 된다. 속이 텅 빈 거 같으면 밥솥으로 향해서 숟가락으로 밥을 퍼먹었다. 그럼, 뭔가 채워지는 것 같다. 이제는 그게 외로움이란 걸 안다. 어린 시절, 고3 때, 나는 많이 외로웠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그건 너무나 외로운 싸움이다. 붙을지 붙지 못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너만 행복하면 된다 라고 말해주지만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기대감, 엄마 아빠의 자랑이 되고 싶은 나만의 욕망. 내가 쟤보단 잘돼야지 하는 그런 질투심들이 내 마음에 송송 구멍을 뚫었겠지. 72개짜리 구멍을 다 메우기 위해선 난 타코야끼가 필요했을 것이다. 가끔은 먹다가 다 토하기도 했다. 다 토하면 다시 시켰다. 나는 이걸 채우지 못하면 학원에 갈 수 없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채로는 싸움을 견디기 힘드니까.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 나는 30킬로그램과 무릎 통증을 얻었다. 수능 만찬으로는 타코야끼 대신 떡볶이를 시켰다. 놀랍게도, 그 이후로 26살인 지금까지 타코야끼를 입에 댄 적이 없다. 그건 이제 나에게 너무 아픈 맛이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고마운 맛이다. 나를 견디게 해준 맛. 누군가는 그걸 폭식이라고 지적하겠지만 나는 그때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다. 고마워, 타코야끼.
그래도 고3때 평생 먹을 타코야끼는 다 먹어서 다시 볼 일은 없겠다.
누군가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렴.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