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설옥은 화가 나면 주변에 있는 물건을 마구 던졌다. 한번은 나와 박설옥이 서재실 그처에서 말싸움을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는 서재 책장에 꽂힌 두꺼운 책들을 나에게 던지며 분을 풀었다. 유치원 앨범 모서리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렸다. 그제서야 박설옥은 소리를 꽥 지르곤 밖으로 나갔다. 흐르는 피를 대충 지혈한 다음 무심코 앨범을 펼쳐 봤다. 유치원 시절의 나는 웃음이 헤펐다. 네모반듯한 앞니 두 개가 눈에 띄었다. 그 뒤에 지금보단 젊은 박설옥이 웃으면서 서 있다. 아빠도 있다. 박설옥이 내 할머니였던 시절,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 얼마 안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박설옥은 점점 날이 서다 못해 미쳐가기 시작했다.
나는 특별한 반항 없이 박설옥에게 얻어맞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노인을 때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손을 올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박설옥은 그걸 알아서 날 마음 놓고 때렸다. 그렇게 속으로만 분노가 쌓여갔고, 고등학생이 될 무렵 할머니보다 7센치 정도 더 커졌다. 입시 스트레스가 한창이었고 할머니는, 아니 할머니여야 할 박설옥은 여전히 거침없이 손을 올렸다. 참다 못해 처음으로 박설옥의 팔을 잡고, 남은 손으로 그녀의 뺨을 때렸다. 박설옥은 오랫동안 당황하다, 이내 나에게 손가락질 했다. 이 미친년! 패륜아! 나는 씩씩거리며 박설옥에게 덤벼들었다.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하필, 바로 옆에 전신거울이 내 얼굴을 비췄다. 울그락 불그락 시뻘건 얼굴, 번데기 같은 근육이 올라섰다. 순하던 눈매가 위로 찢어져 여우같아 보였다. 내 얼굴이 너무 추했다. 그럼에도 나는 박설옥을 때리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박설옥은 때리면 때릴수록 얌전해졌고 마침내, 그녀가 꼬리를 내리고 흐느꼈다. 기묘한 성취감이 숙취처럼 밀려오자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거울에서도, 여전히 내 얼굴은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라서 낯설었다. 미친년, 패륜아라는 말이 뒤늦게 심장을 콕콕 찔렀다. 나는 세면대를 붙잡고 들숨으로 끅끅 울었다. 세상이 뒤집힌 것 같은 기분이 너무나 싫었다.
“그 뒤로 화가 나면, 계속 잘못된 선택만 하는 것 같아요.”
그 후, 지속적인 가정폭력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박주형을 때린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는지. 나는 분노장애 진단과 만성우울 판정을 받고 상담을 다녔다. 선생님께 박설옥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선생님은 진지한 자세로 내 이야기에 경청해 주셨다.
“제 화가 늘 모든 걸 망쳐요. 남들이 절 무서워하고 피하는 것도 힘들고. 제가 나쁜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선생님, 어떻게 하면 화를 참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선생님도, 내가 미친년인걸 알아볼까봐 겁이 났다. 선생님께서 천천히 입을 여셨다.
”화는 참을 수록 스스로를 찌르기 마련이에요.“
내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자, 선생님은 허리를 피라고 하셨다.
”할머니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잖아요. 이건 좋은 발견이에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라고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제가 나쁜 거 아닌거죠?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자신을 지켰어요. 그건 나쁜 게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