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랑

by 미미

해린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호호 불며 식탁에 앉았다. 오후의 여유를 부려볼까, 가벼운 마음으로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았으나 깜짝 놀랐다. 부재중 전화가 20통, 문자가 30개나 와 있었다. 해린은 복잡한 심정으로 문자를 열어보았고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희수 씨, 아버지한테 돈 갚으로 전해주세요. 희수 씨, OO대학이시죠? 찾아갈 수도 있어요. 야, 썅년아, 너네 애비 불러서 돈 갚으라 하라고. 해린은 곧바로 아빠한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해린은 손을 떨며 아빠에게 문자했다.

‘또 돈 빌렸어? 빌린 건 내 알 바 아니야. 근데 빚쟁이들한테 내 정보는 왜 파는데?’

해린의 아빠는 말 그대로 답이 없었다. 인터넷 도박으로 돈을 날리고 집 담보로 대출 받고. 해린에게 빨간딱지를 보이곤 자기만 홀랑 자리를 떠버렸다. 다른 가족들은 전부 아빠를 버렸다. 해린의 동생도, 오빠도, 엄마도 이혼해서 이젠 남이다. 하지만 가족 중 유일하게 해린만 아빠와 연락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해린을 안쓰러운 똥개처럼 바라봤다. 왜? 어째서? 그 안타까운 시선과 따라오는 질문에, 해린은 늘 같은 답을 말했다. 그건 해린이 희수였던 시절로 건너올라간다.

해린의 아빠가 아직 어린 해린에게 목마를 태우며 수줍은 듯 이야기를 꺼냈다. 희수가 태어날 때, 그땐 아주 새까만 밤이었고 달과 별이 유독 밝았다고 한다. 아빠는 희수가 빛 속에서 태어난, 축복받은 아이라 여기며, 깊이 사랑할 것을 맹세했다고 한다. 그때, 아빠의 머릿속에 불현 듯 스쳐지나간 이름 ‘희수’. 밝을 희, 지킬 수, 받은 빛을 수호하는 그런 아이가 되라고 이름지었더랜다. 이름을 지어준 사람을 미워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야, 해린의 서글픈 눈을 보면, 다른 이들은 입을 닫았다. 해린도 해린 나름대로 벗어나보려 개명도 했지만, 여전히 익숙한 이름, 희수에 매번 발목이 묶이는 것 같았다

“뭐? 너네 아빠가 그렇게 말하든?”

휴대폰 너머로 엄마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린은 커피를 마시며 그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엄마는 기가 찬 듯 박장대소를 하더니 해린에게 웃으며 말했다.

“야, 네 이름 네 외할아버지가 절에서 받아왔어. 사랑은 얼어죽을, 니네 아빠 나 분만 다 끝나고 새벽에 술처먹고 기어오더라.”

해린은 잠시 침묵했다. 눈가가 파르르 떨렸지만 곧 입꼬리를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둘은 한참동안 깔깔 웃다가 가벼운 안부를 주고 받은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뒤, 해린은 굳은 입 주위를 엄지와 검지로 꾹꾹 눌렀다. 목구멍이 뜨거웠고 곧 울대가 파르르 떨렸다. 다정하다고 생각했던 허상의 아빠와 작별할 시간이 왔다. 어쩌면, 해린이 온 힘을 다해 피하고 싶었던 순간이다. 날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하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름 이야기가 거짓말인걸 알아도 그런 거짓말로도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던 건 진심이 아니었을까? 아니야, 해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녀는 근처 통신사 센터로 향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오른뺨을 스쳤다. 툭, 누군가 얼굴을 만지고 지나간 것 같아 해린은 괜히 바람이 지나간 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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