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좀 해도해도 너무한거 아니냐? 김노인은 성부터 내기 시작했다. 아들은 그런 김노인의 말을 칼같이 끊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쉽게 내려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추석인데! 대명절 아니냐! 아들은 수화기 너머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자기 아버지를 진정시켰다. 죄송해요, 정말 안돼요. 다음에는 진짜 갈게요. 그 말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아들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상황에 이마를 짚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김노인은 분노 섞인 목소리로 아들에게 외쳤다.
"내가 차라리 그리로 가마."
아들은 극구 말렸다. 김노인은 부산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해봤자 옆동네 김해, 울산이 고작이었다. 그런 김노인이 한반도를 가로질러 서울로 올라온다니, 아들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뜯어 말리려 해도 김노인이 꼼짝도 하지 않고 버텼고 아들은 결국 승낙할 수 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아버지. 그럼 제가 카톡으로 집 주소 보내놓을게요. 그렇게 말하자 김노인이 대답했다. 까똑이 뭐냐? 아버지, 카카오톡이요. 없으세요? 김노인은 모르겠다고 외치며 문자해라 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김노인은 소파에 누워 숨을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리고 골똘이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체면이 있지, 아들 놈 체면도 있지 그냥 올라가는 건 좀 그렇지 않냐. 김노인은 사과라도 한 박스 챙겨가야겠다는 생각에 지팡이를 쥐고 마트로 내려갔다. 낑낑 꼬불꼬불 내려가는 김노인은 참으로 위태로워 보였다. 그는 나가기 전, 아들놈이 사주고 간 스마트폰을 챙겨 갔는데 겨우 문자 메세지 보내는 법만 익힐 수 있었다. 이따금씩 시간이나 확인했다. 오후 7시, 마트며 시장이며 활기를 띄우며 장물을 나눌 시간이었다.
김노인이 아픈 허리를 붙잡고 마트까지 내려갔지만 마트 문을 굳게 닫혀 있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검은 화면을 툭툭 쳐 시간과 날까, 요일을 확인했다. 월요일, 빨간날도 아니었고 마트가 문닫을 시간도 아니었다. 황망해하며 마트 자동문 버튼만 연신 눌러댔다. 그러자 바로 옆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마시던 청년이 김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아버님! 마트 문 안열어요."
김노인이 청년에게 소리쳤다, 망하기라도 했단 말이여? 아뇨, 월요일이잖아요. 대형마트는 이제 둘째 넷째 월요일엔 문 안열어요. 그런 법이 언제 생겼는데. 다 알아요, 그렇게 된지 한참인데 모르셨어요?
"뭘 다 알아! 내가 모르는데. 나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는데!"
김노인은 마트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간판은 '열린 마트'인데, 닫혀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김노인은 다시 집으로 올라가던 도중 동네 게시판을 둘러봤다. 붙어있는 종이들이 낡고 빛바래져 있었다. 게시판 사이에 한참 지난 게시물 하나가 붙어있었다. 나라에서 지원금을 주니 얼른 타가라는 내용, 이미 1년이나 지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라며 알아보기 힘든 영어 문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그 옆엔 상형문자같은 QR코드가 그려져 있었다. 김노인은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화면을 켜봤다. 수많은 어플이 깔려있어도 김노인이 만질 수 있는 어플은 통화, 메세지가 고작이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시물 사이에 이런 것도 보였다. '노인분들께 디지털 사용법을 가르쳐 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큐알코드를 확인해 주세요.' 김노인은 기가 차 헛웃음을 흘리며 집으로 올라갔다.
저녁이 되니 아들이 사진 하나를 보내줬다. 열차표를 예매했다며 자기 휴대폰을 사진으로 찍어 그걸 김노인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게 뭐냐고 김노인이 문자하자, 요샌 다들 이렇게 한다고 자기 딸이 말해줬다고 답장이 왔다. 그냥 기차표 사러 이제 못가요, 다들 인터넷으로 사죠. 김노인은 아들에게 이렇게 답장했다, 네가 올해 몇살이지? 아들에게 답이 왔다.
'아버지, 저도 이제 60은 넘었죠.'
김노인은 아들이 넘겨준 사진을 확인하며 KTX에 자리잡아 앉았다.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려 했지만 온통 산을 뚫어놓은 지름길 투성이라 검은 암전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마치 기회를 줄 듯, 무엇이든 도와줄 듯 호의를 부리지만 정작 나 같은 사람에겐 등 돌려 앉아 있는 것 같구나. 김노인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 역무원 한 명이 돌아다니며 표를 검사했다. 김노인 차례가 되자 김노인은 아들이 보내준 사진을 보였다. 역무원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김노인에게 대답했다. 아버님, 이런 걸론 증명이 안돼요. 본인 표를 보여주셔야죠. 김노인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개졌다. 그는 여전히 언성이 높았다 기차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역무원에게 같은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건 왜 안돼요? 이건 또 왜 안돼요? 내 아들이 끊어준건데 내가 뭘 또 증명하란 말이요? 역무원 또한 언성을 높였다, 아버님! 막말로 그 사진을 어디 인터넷에서 가져왔는지, 저희가 어떻게 알아요? 김노인은 울분이 섞인 듯한 목소리를 내며 뜨거운 고함을 질러댔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인터넷이 뭔데! 아무도 나한테 가르쳐주지 않았잖여! 내 자리요, 내 자리라고! 나한테 도대체 왜이러는거요? 그래! 늙으면 죽어야지, 늙으면 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