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재호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모르는 사람인 척 고개를 돌렸다. 그저 재호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쓰게 웃을 뿐이다.
재호는 노숙자다. 부산역에서 살고 일주일에 한 번씩 깨끗한 상자 세 개를 줍는다. 그는 구걸하진 않지만 한번씩 일용직에 나간다. 샤워는 공중화장실에서 해결한다. 요즘은 옛날에 비해서 공중화장실이 많이 줄어든게 재호의 불만이다. 재호는 성실하다. 성실한 노숙자, 재호가 이렇게 지낸지도 자그마치 10년이 넘었다. 재호는 IMF때 미끌했다.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들이 재호 앞만 스쳐 지나갔다. 그는 팔수 있는 걸 팔고, 포기할 수 있는 걸 포기하다보니 어느새 노숙인이 되었다. 정말 어느 순간 노숙인이 되어서 잘곳을 찾아 부산역을 찾았을 때쯤, 그때서야 비로서 자신이 노숙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그렇게 스며들듯 이름자가 바뀌곤 한다. 노숙자, 재호가 이름보다 많이 불리는 어떠한 종족이 되었다.
그는 언뜻 보기 그리 처량하지 않았다. 그는 노련했고 친구도 있었다. 노인들이 두고 간 바둑판을 주워서 노숙인들과 알까기 하면서 놀았다. 가끔 돈도 걸고 잃을때도 있지만 따면 컵라면을 사러 갔다. 컵라면을 사러 가는 길, 사람들은 의외로 노숙자를 '벌레 보듯' 쳐다보지 않는다. 저 멀리 먼 산을 본다. 보기 위해 노력하려고 많이 애쓴다. 가끔 안절부절해하는 인간도 있다. 마치 먹다 남은 빵이라도 줄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숨을 참는다. 흡, 하고 짧게 호흡하는 소리를 들으면 재호는 피식 웃으며 낄낄댔다.
재호가 편의점에 가는 길에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파란색 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열심히 줍는 봉사자였다. 이 근처 교회에서 나오는 건실한 청년인 모양인데, 재호에게 친절하다, 친절하려고 노력하는건지 정말 친절한건진 모르겠지만 친절하다. 재호는 그가 마음에 든다, 자주 건빵과 우유를 나눠주기 때문이다. 재호가 오늘은 이것 뿐이야? 라고 실실 웃으면 머리를 조아리며 다음엔 더 가져올게요 라고 낑낑거린다. 말하자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봉사자가 마음에 들었다.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위에 것들이 아닌, 밀려난 사람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는 태도가 말이다.
편의점 안에 들어가면, 알바생은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불쾌함을 연신 들어내며 아 씨, 라고 작게 중얼거린다. 재호는 쭉 걸어 곧바로 신라면 작은컵을 건넸다. 알바생은 최대한 빨리 계산하고 재호에게 젓가락을 챙겨준다. 재호가 젓가락 하나만 더, 를 외치기 전에 한 뭉치를 집어 재호에게 던지듯 줬다. 친절하네, 재호는 그리 생각하고 주머니에 젓가락을 쑤셔넣었다. 재호가 다 나가지도 않았는데 알바생은 패브리즈를 꺼내 온 편의점 구석구석 탈취제를 뿌렸다. 재호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걸어 나왔다.
재호는 그렇다, 이렇게 살아올 뿐이다. 가벼운 노름을 하고 조금 웃기도 하고 청결도 좀 신경쓰고 돈도 조금 벌어보려고 한다. 젊은 봉사자에게 거들먹거리기도 하면서 조금 우쭐해보고 싶어 하는 그런 녀석이다.
그런 재호 앞에 경찰 두 사람이 앞길을 막았다. 늘 여유로웠던 재호의 얼굴이 처음으로 당황스러움에 일그러졌다.
"아저씨, 저 여자분 엉덩이 만졌다면서요."
재호가 뒤를 돌아보니 생전 처음 보는 여성이 치마 뒤를 만지며 씩씩대고 있었다. 재호는 스스로를 변호했다. 난 그냥 라면 사러 간 것 뿐인데요? 경찰은 재호의 말은 들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재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파란조끼의 봉사자와 눈이 마주쳤다. 봉사자에게 손을 흔들었고 봉사자는 재호를 잠시 바라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