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물건, 생각, 쓰레기, 음식, 심지어 핸드폰 속 앱과 사진, 불필요한 파일까지 모조리 넘쳐흐르는.
그래서 또 어떤 이들은 기껏 모은 것들을 나눠주고, 내다 팔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정리하는 작업에 또 시간을 쏟기도 한다.
나의 아이는 먹을 음식이 없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먹고 싶지 않아서 고민했을 뿐. 또 입을 옷이 없어서, 갖고 놀게 없어서, 읽을거리가 없어서, 볼거리가 없어서 속이 상했던 적도 없다. 불과 내가 그 나이 때에 지우개 하나를, 학교 앞 손가락 만한 어묵 꼬치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먹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사이 이렇게 풍족하다 못해 넘쳐흘러버리게 되었는가.
조카들은 아이스크림 꽁지를 먹지 않는다. 우리 딸은 심지어 요거트 뚜껑도 핥지 않는다. 숟가락으로라도 쓱쓱 긁어먹을 법 한데 눈을 말똥 하게 뜨고
“뚜껑을 왜 먹어? 여기 안에 있을 걸 먹어야지. 그건 그냥 버리면 되잖아.”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이야. 요즘 같이 건강 챙기는 시대에는 굳이 달콤하고 풍족한 맛을 한 입 더 먹고 그걸 몸에서 빼내느라 더 힘들게 하느니 사서 덜 먹고 버리면 간편하고 매우 쉬운 방법이다. 또 먹고 싶다며 다음에 다시 사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이렇게 많은 것들이 넘쳐흐르는 이때에 왜인지 감성만은 손발이 오그라 든다는 문장과 함께 외면하고 무시하며 말라가고 있다.
냉철하게, 비판적은 사고를 갖고, 현실을 직시하는 삶도 중요하고 사진으로 나를 표현하는 방법도 멋이 있지만 함축된 단어 한 마디에, 고심해서 쓴 문장 한 줄에 희로애락이 있다는 걸 많이들 잊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생각할 기회의 박탈.
이제 더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머리로 외우지 않는다. 굳이 머릿속에 주판알을 떠올리며 암산하지 않는다. 감명 깊게 읽었던 책 구절을 마음으로 담지 않는다. 그저 폰에 저장하고, 손목시계로도 계산하며, 책 제목과 함께 명언을 검색하면 서랍에 넣어두었던 양말을 꺼내는 것보다 쉽게 정보를 꺼내 준다. 이렇게 되다 가는 어느 날인가는 로봇들이 만들어 놓은 인간보존구역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우리를 예뻐하고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에 만족하는 시대도 오지 않을까 하는 오싹한 생각을 한다. 그런 생활이 이상한 걸 느끼지도 못한 채 그렇게 결핍도 위험도 없이 안전하게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때가 올까 봐 겁이 난다.
부족함을 알아야 그것을 채우고 싶어 하고, 실패해봐야 여러 길을 찾게 되는데 대홍수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많으니 그저 선택만 하면 된다.
나는 요즘 아이와 도서관에 굳이 가려고 하고 있다. 내가 봐도 재미있는 영상과 자극적인 텔레비전에 이러다가는 나의 정신과 마음이 먹혀버릴 것 같아 도서관에 있는 보드게임을 하더라고 꾸역꾸역 그곳에 가려고 하고 있다. 아이에게 오래된 책 냄새를, 스르륵 넘기는 책장 소리를, 소리 없이 굴러 다니는 한 글자 한 글자의 리듬을, 실패하는 법을, 성공하는 법을, 사랑하는 법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상상의 세계를 지켜주고 싶어 가고 또 간다.
어떤 이들은 밤에 쓰는 일기를 다음 날 보지 말라고 한다. 다음 날 수치심에 이불킥을 하게 된다며.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감성을 표현하는 글이 남들 보기에, 나 보기에 좀 부끄럽고 부족하면 어떤가. 여전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감성도 내내 퐁퐁 솟아나고, 흘러 흘러 바다를 이루면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모든 것이 넘쳐흐르는 대홍수의 시대에 우리의 감성이 자꾸 말라가는 느낌이 서글퍼 눈물 한 방울 흘리고픈 밤이지만 흐르지 않는 내 눈물이 야속해서 끄적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