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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예 Dec 19. 2021

캐릭터 만들기-시나몬 베어의 탄생

진저 캣의 일기

그림을 그려보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개성이 있으면서 호감이 가고,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실루엣을 만드는 게 어렵다는 걸 말이다.

예전에 글을 전공한 사람들과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모두 자신의 이야기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었다. 그들은 따라 하고 싶은 그림으로 단순한 외곽선을 가진 그림들을 샘플로 가져왔었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그들이 그 그림을 따라 그리는 일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도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시나몬 베어는 무엇을 그려야 할지 막막할 때 탄생한 캐릭터다. '아빠는 곰돌이야'라는 창작 그림책을 발표한 뒤 오래도록 창작물을 완성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다가 하나씩 그려간 그림이다.  

나는 무엇을 잘 그리고, 어떤 재료에 익숙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초심으로 그린 그림이다.  

  

처음엔 캐릭터의 이름이 없었다. 그냥 우리 딸이 나를 곰돌이처럼 푸근한 엄마라고 불렀고, '아빠는 곰돌이야'가 15쇄를 넘기면서 내 그림의 뿌리는 곰돌이에 있다는 생각으로 그렸다.

시나몬 베어라는 멋진 이름은 고등학생 딸이 지어줬다. 나도 향기와 맛이 느껴지는  시나몬베어가 마음에 들었다.

   

주변 사람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시나몬 베어를 보여줬을 때 반응이 좋았다. 소소하게 만든 엽서와 달력 굿즈도 잘 팔렸다. 나다움을 찾기 위해 나의 계절 이야기를 담아서 그렸을 뿐인데 사람들이 공감하고 바라봐주는 게 신기했다. 그때 생각했다. 내 그림의 개성은 빈티지한 느낌과 스토리텔링에 있구나.

나는 시나몬 베어의 색을 내기 위해 다섯 개의 색연필을 번갈아가며 했다. 그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계절마다 하는 나의 사소한 일들을 그리고,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담아서 그리는 즐거웠다.


'나는  트렌디하고 화려한 스킬의 그림을  그릴까, 그럼 돈도    있을텐데.'

그런 생각으로 위축된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스우파의 허니 제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나도 하고 있다.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춤추는 거 아니잖아요. 내가 좋아서 추는 거잖아요."

나도 내가 좋아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의 밀도를 올리고, 자료를 찾고, 아주 작은 부분까지 고치고,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그림의 완성도를 올리는 일은 모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즐거운 도전이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시나몬 베어는 동굴 속에 있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만든 캐릭터다. 그래서 누구와 함께 있는 장면보다는 혼자 있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어쩌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장면에서도 내가 인내하고 보살펴야 하는 작은 동물들로 그렸다. 시나몬 베어의 얼굴도 무표정이나 옅은 미소만 있다. 불과 일 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시나몬 베어는 창작자로서, 개인으로서 울다가 눈물을 닦으며 다시 연필을 잡고 만든 캐릭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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