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진저캣
월요일과 화요일은 바빠서 기직맥진이지만 수요일이 되면 살 것 같다. 그날은 혼자 있는 게 너무너무 즐거운 날이다.
지난 주 수요일에는 오랜만에 밤으로 만든 음료가 먹고 싶어서 카페 per에 갔다.
저녁 일곱 시쯤이었는데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노트북을 할 수 있는 일인석은 빈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가장 좁아 보이는 4인석에 앉았다.
원래 계획은 음료를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아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거였지만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어서 수첩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다음 작품으로 구상 중인 캐릭터를 이렇게 저렇게 스케치하는 게 즐거웠다. 창작을 하는 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열정과 재미를 끌어올리게 한다. 사는 게 신나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행복감이 차오른다. 그러다 본 작업에 들어가면 절망하며 자기 비하에 빠지지만 말이다.
그림 그리기에 빠져 있다가 아무래도 음료가 안 나와서 카운터를 보니 아르바이트생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내 주문을 잊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료가 아직 멀었는지 물으니 역시나 그는 내 주문을 잊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죄송하다며 서비스로 밤빵을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카페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새로운 가게가 있었다. 계란집이라는 이름도, 아기자기한 가게 입구도 귀여웠다. 귀여운 건 무조건 좋다.
그 가게에서 6구짜리 맥반석 달걀을 샀다. 내일 아침으로 딸과 먹어야지.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가는데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나에게 남자가 필요한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고 있는데 그날도 역시나 모처럼 혼자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서 답을 얻지 못했다.
나는 남자가 아니라 즐겁게 대화하거나 나의 풍부한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필요한데 그것도 생각해 보면 없는 것도 아니다. 나에겐 늘 어떤 해프닝이 있고 내가 그걸 떠들어댈 때마다 내 주변 사람들은 흥미롭게 듣는다. 단지 그들의 채널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나 혼자 보낼 뿐이다.
머릿속에서 글자들이 떠다닐 땐 이렇게 브런치나 인스타나 블로그에 생각을 정리해서 적을 수 있으니 딱히 누군가를 자리에 앉혀놓고 떠들 일도 없다. 그리고 마주 앉은 이들의 지루한 이야기를 참고 들어야 하는 일도 없으니 혼자인 게 편할 때가 많다.
혼자가 즐거운 건 드라마도 한몫을 한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놓고 이혼의 후유증을 견디기 위해 하나둘씩 챙겨 보게 되면서 드라마는 고단한 일상을 버티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군입대를 계획하고 있는 아들도 “내가 없어서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엄마가 드라마 보면 되니 잘 됐어요.”라며 안심했다. 그러니? 엄마 걱정했니? 난 네가 걱정인데.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있구나.
그뿐 아니라 최근에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혼자 조용히 보낼 여행도 생각도 하고 있으니 혼자인 걸 염려했던 지난날의 내가 무안할 정도다.
그랬다. 수요일엔 충만했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근사했다. 북토크에서 만난 작가님이 작업실에 놀러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알바가 끝난 딸을 데리러 가야 해서 우리의 대화는 짧았지만 온통 작업에 관련된 얘기를 하니 좋았다. 수요일에 혼자서 카페에 가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내 메모장에 적어놓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충만하게 하기에 더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는 작가를 만나서 그림에 대한 얘기를 나눈 그날 밤, 나는 내 안에서 소통을 그리워하는 굶주린 영혼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내가 몹시 지쳤다는 걸, 몹시 외로워서 말라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때마침 인스타에 '#동료작가님들과 연말파티'라는 피드가 떴다. 나는 그 모임 사람들과 별로 어울리고 싶진 않지만 끼리끼리 모여서 하하 호호 웃는 게 부러웠다. 나도 작업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더미북을 서로 보여주며 사소한 피드백이라도, 작은 응원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홀로 떠있는 섬이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