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나 조선시대 불복장에서 저런 비단 조각들이 꽤 많이 나온다.
이런 천쪼가리 뭐 그리 귀하다고 불복장이며 여기저기 넣나 싶었는데
전통시대 직물과 자수품을 여럿 보다보니 이해가 확 간다.
베틀 오르기 전에 저 복잡한 도안을 구상하여 온갖 무늬들을 직접 짜내거나
수틀 앞에 앉아 한땀한땀 그림을 지어냈을 것을 생각하니
장인의 인생을 저 천 한 장에 갈아넣은 듯한 느낌이 와닿는달까.
근현대 기계자수나 대량생산 방직품을 보고 자란 나로서는
유물에 섞여나오는 천조각들이 “귀품”이라는 생각이 안드는게 당연하다.
이런 감상은 기계자수를 함께 놓고 보고 나서야 더욱 확실히 느끼게 된다.
전통시대 자수와 방직은, 현대 대량생산품은 말할 것도 없고 실용품이 아닌 “감상” 혹은 “보관”용 현대의 재현품과도 차원을 달리 한다.
일천제(一闡提)가 뭘 해도 불(佛)이 될 수 없는 것같은
아득한 격의 차이가 느껴진달까.
2023. 5. 26
파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