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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 다기 굽는 장인은 어디로

by 파벽

차 한잔 내려 마시려 상감이 되어 있는 청자완을 꺼냈다가

청자는 맘에 드는 걸 구하기가 참 쉽지 않지,

이 완은 꽃이 아닌 바탕 쪽에 흰 흙을 채워 꽃을 비취빛으로 표현했는데

귀엽게도 동글동글한 꽃잎의 상감 선이 이리 깨끗한 걸 보니

장인의 성격이 꼼꼼하고 고지식하려나, 상상하다가

이걸 만든다는 형제 도공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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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 형제의 솜씨 차이. 왼쪽이 형, 오른쪽이 동샘.


일전에 찻잔이나 한두 개 사려고 돌아다니다 흔치 않게 청자를 주로 다루는 곳을 발견하였다.

매대 위로 잔뜩 쌓인 청자 뒤에서 팔을 괴고 졸던 아저씨는

주인장을 찾아 기척을 내는 내 헛기침 소리에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다완마다 솜씨가 영 차이가 나길래 이유를 물으니

크고 무늬가 깔끔하게 표현된 완은 형님이, 작은 다완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 했다.

대답해 주시는 아저씨도 흰머리가 성성하여 나이가 적어 보이진 않았는데

같은 크기 다완인데도 그릇마다 다른 무게와 두께, 상감된 꽃의 엉성한 선 같은 것들이

어쩐지 헐렁한 주인장 모습과 찰떡이라 슬며시 웃음이 났었다.

숙련된 형님이 만든 것과 주인 아저씨가 만든 것은 가격도 몇 배나 차이가 졌지만

엉성함도 매력이라 기꺼이 형제의 완을 몇 개 씩 사왔다.


오늘 이 청자완을 꺼내 차를 내리다

문득 고려시대 상감청자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작년 대구 간송 여세동보 전시에서 한참동안 내 눈을 붙잡았던

13세기 전반 고려 상감청자모자합 사진을 띄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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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414_195157869.jpg 간송 소장 보물 청자상감국모란당초문모자합


외합과 자잘한 내합의 2중 구조라 외합을 모(母)합, 내합을 자(子)합이라 한다.

모합 뚜껑 위로 국화와 모란당초문이 꽃비가 내리듯 가득하고

꽃잎 모양의 자합 위에도 가지마다 피어난 모란이 탐스럽게 표현되며

모합 옆면으로는 흰 구름 문양을 휘감아 돌렸다.

이 장인은 무슨 상감을 붓으로 수묵화 그리듯이 해놨단말이지.

이게 진짜 상감인가, 그냥 붓질해서 그린 거 아닌가,

사진을 한참 뜯어보다가

찬탄의 한숨을 쉬며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은 장인의 숙련도와 자본주의적 대량생산이란,

장인의 정교하고 화려한 기교와 단순 간결한 모더니티란

그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이름들인지.


이미 손이 둔해져 버린 지금도 가끔씩 꿈꾼다.

직선보다 곡선을 선호하는 내 감각대로 섬세한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을.

그래봐야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나

궁극의 경지를 찾아 혼자 즐거이 고난의 수행길을 가는 그런 인생을.


지금과 별 차이는

...없나?!



2024.04.14

파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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