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리복 입은 국회의원이 보고 싶다
우리 부부는 공통 관심사가 거의 없다. 서로의 직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나눌 말이 별로 없고, 쉬는 날이 다르다 보니 이제 와서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도 어렵다. 그런 우리에게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면 끝날 줄 모르는, 두 사람 사이의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가 하나 있는데, 정치다.
같이 밥을 먹을 때면 우리는 꼭 뉴스를 튼다. (생방이든, 어제 날짜 뉴스든 상관없다.) 뉴스라는 게 그런 건지 정치가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여의도 소식은 바람 잘 날 없이 늘 이슈거리를 만들어내고, 그래서 뉴스 한 꼭지 한 꼭지가 우리에게 일용할 좋은 안주가 된다. 가끔은 쿵짝이 잘 맞을 때도 있고, 때로는 논쟁에 불이 붙어 한쪽이 화를 내거나 뉴스를 꺼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이 시간이 우리 부부의 거의 유일한 공통 관심사이자 가장 즐거운 오락거리다. 나는 가끔 같이 뉴스를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남자랑 결혼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뉴스에서 정치 관련 사건 사고가 나오면 우리가 꼭 하는 게 있다. 바로 등장인물 이력 검색이다. 우리는 그 인물이 지나온 흔적, 즉 어떤 학교를 나왔고 어떤 과목을 전공했는지, 정치인이 되기 전에 직업은 뭐였는지, 어떤 활동을 했고, 누구와 연대했으며, 어떤 책을 펴냈는지 등을 살펴본다. 인물의 약력을 훑어보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도 놀라지 않겠지만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법조계 출신이다. 간혹 기업가 등 재계 출신이나 사회 운동가들도 있지만, 소위 정치판에서 한 자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열에 여섯일곱은 판검사 출신인 듯하다. 마치 정치인이 되려면 꼭 이런이런 시험을 보고 이런 종류의 직업을 거쳐야 한다는, 스펙 몇 종 세트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고 그냥 그렇게 느낀 것이니 오해 없기를.) 김현미 현 국토부 장관이 사회생활 시작을 정당 홍보담당으로 일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던 건, 처음부터 정치라는 것에 뜻이 있었던 사람을 찾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반증이기도 할 테다.
국회는 입법부다. 삼권분립 체제 아래서, 국회는 국가에 필요한 법안을 만들고 상정해서 행정부가 시행하게 만드는 곳이다. 가끔 대통령이 속한 행정부를 한 국가의 컨트롤타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국가를 유기체로 봤을 때 머리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은 오히려 국회라고 생각한다. 청와대부터 시작해 각 정무부처, 지자체로 이어지는 행정 조직은 입법부인 국회가 만든 법안이 국민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게 만드는 손발에 가깝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 손 발이 편하려면 머리가 날카로운 지성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의 머리인 국회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머리에게는 차가운 이성만 있는 게 아니다.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올바름에 대해서 판단하고 때로는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도 머리다. 국민들의 삶에서 잘못된 부분, 아픈 곳을 발견하면 누구보다 먼저 뜨겁게 달아올라 손 발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머리 된 국회의 또 다른 역할이다.
지난해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규모가 큰 기업부터 적용하던 것을 중소기업으로 확대하고, 곧 모든 사업장에 적용될 거라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던 무렵, 뉴스를 접한 덴버는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요리사는 근로자가 아닌가 보네.’
외식업의 성격상 주 52시간을 적용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단 대부분의 고용주인 개인 사업자가 그 법을 다 지켜가며 직원을 고용하기가 쉽지 않고,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라고 한들 하루 8시간 영업하고 문 닫아서는 유지비조차 벌기 어렵다. 피고용자인 종업원들은 안 그래도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형국에 주 52시간 근무는 고사하고 연장근로수당조차 입 밖에 꺼낼 수 없다. 그런 그들에게 주 52시간제는 밤하늘의 별보다 멀다.
법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면 이러한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 근로시간이 긴 서비스업의 경우 일간 근로시간을 더욱 유연하게 사용하게 할 수도 있고, 고용주에게는 인력을 더 고용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주는 건 어떨까? 잘은 모르지만, 규모가 작은 자영업자에게 줄 수 있는 세금 혜택도 방법일 것 같고, 불가피하게 초과 근무를 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조금만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제도를 만들면 ‘일반적인 9 to 6 직장인’의 근무 패턴 이외의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도 이 제도를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잘 모르고 하는 소리지만.
대한민국에서 외식업이나 서비스업에 속한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사법시험이나 로스쿨을 패스해 판검사가 된 사람이 많을까? 국민의 직업군을 비율로 따져 보았을 때, 지금 국회의원 출신 직업의 비율은 비정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니 국회에서 나온 법안은 대다수 국민들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져있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래서 국회가 하는 일마다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끔 덴버에게 이 담에 커서(혹은 늙어서?) 국회의원이 되라고 말한다. 정말 우스개 소리지만, 솔직히 백 퍼센트 빈말도 아니다. 적어도 요리사라는 직업을 경험해본 누군가가 국회에 있어야 현장을 개선할 수 있는 법이 나올 것 아닌가. 요리사뿐만이 아니다. 일할 자리를 찾지 못해 비자발적 백수가 된 수많은 사람들, N포 세대라고 불리며 윗세대의 눈총을 받는 사람들, 회사에서 집에서 치이다 새우등 터지고 있는 이 시대의 워킹맘, 토끼 같은 자식을 위해 커피 값 한 잔 아끼려 발버둥 치는 우리 모두의 아빠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 정말로 삶이 녹아있는 법이 만들어지려면, 사법시험의 확장판 같은 지금의 국회 문턱은 한참 더 낮아져야 한다.
솔직히 이건 나를 위한 제안이기도 하다. 재택근무를 할 때마다, 주 40시간을 이미 훌쩍 채워서 금요일 이른 오전에 퇴근할 때마다 느끼는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싶다. 그리고 요리사 남편이 엄연한 근로자로서 남들 쉴 땐 일하더라도 남들 일할 때는 당당히 쉬길 바란다. 꼭 내 남편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초록창에 검색하면 하얀 조리복을 입은 사진이 뜨는 국회의원을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