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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미미 Dec 28. 2019

3. 요리사,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이 땅에서 요리사로 산다는 것


교육부가 발표한 ‘2019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5위로 조리사(요리사)가 뽑혔다고 한다. 게다가 2018년에는 무려 6위였단다. 이 통계를 기쁨 반, 놀람 반으로 읽어 내려가던 나와는 달리, 현실세계 요리사인 덴버는 혀를 끌끌 찼다. 이게 다 백종원 선생님 때문이야. TV에서 애들이 좋은 것만 봤어.



하긴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내가 자라오는 동안 요리사가 인기 직업군에 속했던 적은 없었다. 그 시절 좋은 직업, 즉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추천하는 직업이란 교사, 의사, 판검사였다. 이따금 아주 패기 넘치는 아이들이 대통령이나 UN 사무총장을 장래희망으로 써내긴 했어도, 요리사라니? 내게는 유튜버가 2019년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라는 것보다, 요리사가 상위에 랭크되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게 느껴진다.


덴버 말마따나, 몇 년 전부터 쏟아져 나온 요리 관련 TV 프로그램들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조명 아래 하얀 조리복을 입고 현란한 손놀림을 뽐내는 스타 셰프의 모습이 아이들이 생각하는 요리사일 테지. 아니면 백선생님의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스타덤에 올라 대박 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이 땅에서의 요리사

최근 인기 프로듀서가 만든 한 방송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식당을 열고 직접 만든 요리로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넓고 깨끗한 주방에서 뚝딱뚝딱 맛있는 요리 한 그릇 만들어 내는 것이, 힘들어 보이면서도 꽤 할 만해 보이고, 거기에 약간의 감동까지 조미료 치듯 맛깔나게 버무려져 있었다. 그 방송을 보고 있자면 누구나 멋진 요리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고, 요리사의 일상은 고되지만 뿌듯한 순간으로 가득해 보인다.


하지만 어떤 방송에서도 조명이 꺼지고 난 뒤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바쁜 일과가 끝나고 나면 엉망이 되어있는 주방,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기름때 묻은 집기들. 손님이 먹을 한 끼를 준비하기 위해 가끔은 주방에서 선 채로 때워야 하는 점심밥. 축축하고 더러워진 조리복 아래 숨어있는 수많은 흉터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는, 어디에도 없다.


칼을 쓰고 불을 다루는 직업이니 육체적으로 힘든 건 당연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나 그의 가족이 되면 익숙해 질래야 질 수가 없는 게 바로 다치는 일이다. 우리 집 약장은 마데카솔부터 화상연고, 흉터 연고, 거즈, 반창고, 소독약 등 웬만한 상처는 집에서 뚝딱 응급처치가 가능할 만큼의 의약품으로 가득 차 있다. 약국이 아니라 정형외과에서 처방해주는 몇만 원짜리 재생 연고도 있는데, 이건 지난해 여름 덴버가 손가락을 크게 다쳤을 때 병원에서 처방받은 특수 의약품이다.


그 날따라 이상하게 브레이크 타임에도 연락이 없길래 많이 바쁜가 싶었다. 그러다 퇴근 즈음이 되자 웬일로 전화가 걸려왔다. 일이 좀 생겨 일찍 마쳤으니 회사로 데리러 오겠단다. 느낌이 싸했다. 아니나 다를까, 운전대를 잡은 왼쪽 손가락에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다. 그것도 뼈 보호하는 딱딱한 지지대까지 더해서.


2018년 8월에 찍은 사진. 왼쪽 손가락에 붕대와 지지대가 보인다.


점심 영업 중 너무 바쁜 나머지 재료를 손질한다는 게 왼쪽 검지까지 썰어버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늘 해오듯 대충 붕대 감고 일을 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피가 멈추지 않아 병원에 갔단다. 결국 몇 바늘을 꼬매고 왼손 쓰지 말라는 처방을 받았다며, 덴버는 멋쩍게 웃었다. 물 들어가지 않게 하겠다고 조리용 고무장갑을 끼고, 랩까지 감고 샤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을 상상해보라. 칼에 베이고 불에 데는 일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질 수가 없다.



요리사와 부대끼며 살고 있는 내가 느끼기에, 시도 때도 없이 다치는 것보다 더 그를 힘들게 하는 건 쌓여만 가는 마음의 짐이 아닐까 싶다. 주 52시간이 장안의 화제일 무렵, 지나가는 말처럼 덴버는 이런 제도 생겨봤자 요리사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황금 휴일에 맞춰 비행기 티켓팅하는 것도, 화창한 주말 가족 행사에 얼굴 내미는 것도 요리사에겐 그림의 떡이요 절벽 위의 꽃이다. 이게 내가 여행을 못 가고 가족 식사에 참석하지 못해서 서러운 게 아니다. 황금 휴일도 크리스마스도 혼자 지내게 해야 하는 아내에게, 추석 명절에도 얼굴 한번 비추지 못하는 아들을 보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에게 쌓여가는 미안함이 그를 서럽게 한다.


결혼 초 몇 번인가 쉬지 못하는 휴일이 반복되더니, 결국 덴버 본인 생일에도 늦게까지 일해야 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고 나의 참을성이 폭발한 적이 있었다. 너의 생일을 위해 나는 이런 것, 저런 것을 준비했는데, 그 날만큼은 꼭 쉰다고 해놓고 이게 무슨 짓이냐며 역정을 냈다. 그때 아마 처음으로 덴버가 내게 화를 냈던 것 같다. 너도 그렇게 화가 나는데 당사자인 나는 어떻겠어?라고. 그러고는 결국 내게 미안하다 사과하던 덴버의 얼굴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다.


출처: 직장내일


남들 쉴 때 일했으니 남들 일할 때는 쉬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외식 영업장 중에는 아직도 주 6일인 곳이 많고, 그 마저도 성수기인 연말이 되면 몇 주간 쉬는 날은 꿈도 못 꾸기도 한다. 지금에야 호텔로 옮겨 주 2일은 꼬박꼬박 쉬는 덴버지만 중요한 예약이 있으면 휴일을 반납하곤 한다. 호텔이나 대기업이라고 해도 외식 영업장의 인건비는 항상 타이트해서, 한 명이 급한 용무가 생기거나 (위의 덴버 일화처럼)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휴무를 반납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죄의식까지 덤으로 쌓여만 가는, 끝나지 않고 피할 수도 없는 미안함의 늪은 직업병처럼 깊어만 간다.



요리사가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또 하나의 정신적 장애물은 바로 요리사를 대하는 사회의 시선이다. 지금에야 어린 친구들의 장래희망으로 언급될 정도로 제법 위상이 올라갔다고 하지만, 막상 자식이 요리사를 하겠다고 할 때 적극적으로 응원해 줄 부모가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겠는가? 애초에 부모님들 대상으로 장차 내 딸 아들이 되었으면 하는 직업을 조사하면 요리사는 후보군에 들지도 못하지 싶다. 앞에서 살펴본 교육부 조사에서 고등학생의 장래희망 리스트에서는 요리사가 18위로 밀려나는 것만 봐도, 실제 이 사회에서 요리사의 직업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요리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느낀 드라마 장면이 있다. 꽤 오래전에 나온 일본 드라마 ‘밤비노’의 한 장면이다. 그저 파스타가 좋아서 요리사가 된 주인공에게, 오랜만에 만난 고향 선배가 묻는다. 그걸로 괜찮냐고.


밤비노 10화 스크린 샷. 마지막 짤 주인공의 표정이 압권이다.



파스타가 좋아서, 요리가 좋아서 고향을 떠나 도쿄까지 올라와 온갖 (드라마스러운) 역경을 넘어온 주인공은, 선배의 그 말 한마디에 며칠을 열병처럼 방황하고 만다. 몸이 힘든 것도, 촌뜨기라고 무시당하는 것도 모두 씩씩하게 이겨내 왔던 그가 선배의 말 한마디에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꽤 묵직한 여운을 준다.

(결말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더 이상 스포 금지. 시간 되시면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사.

퇴근 후 쓰러져 잠든 덴버의 핸드폰에는 요리 영상이 재생되고 있고, 이제 곧 2020년으로 갈아 끼울 다이어리에는 기름때 묻은 레시피가 가득하다.

오늘도 덴버처럼, 그냥 요리가 좋아서 업으로 삼은 이들이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지친 심신도, 주변의 시선도,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별과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스포트라이트도 뒤로하고 꿋꿋이 제 갈길을 가고 있다.


그들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해, 그게 의미가 있어?라고 묻는 건 의미가 없다.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 혹은 전도유망한 미래가 있어서 그 길을 가는 게 아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뿐이다. 들어온 주문에 맞게 요리를 만들어 내고, 맛있는 한 끼로 인해 즐거운 순간을 선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만큼 화려한 조명을 받지도 않고, 맛있다는 칭찬보다는 컴플레인을 들을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르고, 가끔은 왜 그렇게 사냐는 사람들의 시선도 받아야 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 지치고 힘든 하루야말로 요리사다.


언젠가는 TV 카메라가 이런 모습도 더 많이 비춰주면 좋겠다. 그 모습을 보고 요리사를 꿈꾸는 아이들은 줄어들지 몰라도, 우리가 사 먹는 한 접시는 더 맛있게 느껴질지도 모르니.


이 땅의 요리사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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