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카카오톡 자동 로그인을 하며 생각했다. 내게 패스워드를 묻지 않아서 진심으로 고마워. 언제가 지난 로그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내게 브런치가 패스워드를 물었다면 난 기록할 의지를 상실한 채 어플을 닫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만들고 내가 잊어버린 패스워드를 찾다 보면 스스로 바보가 된 기분이다. 나만 아는 암호여야 하는데 나도 모르는 내 암호들이 온라인에 가득하다. 패스워드 쓰라고 빈칸이 뜨면 철렁하며 휴대폰 인증을 준비해야 하는 신세지 말이다.
브런치의 안녕을 확인하지 않았던 그 사이, 나는 4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때론 이러다 미국 생활이 과거 나의 캐나다 생활보다 길어지겠다 싶었고 자연스럽게 눌러사는 게 아닐까 했는데 남편은 성공적으로 바늘구멍을 뚫어냈고 우리는 귀국을 선택했다. 집 근처 몰에서 최종 연락을 받았는데 그 순간 나는 민망하게도 눈물이 터졌다. 가장 확실한 이유를 달아보자면 (개)바쁜 남편을 따라간 타국에서 전업맘이 되어 육아와 출산과 살림에 24시간을 통째로 바친 내 (개)고생의 세월이 서러웠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들도 있겠으나 그것들은 문자로 들으면 하찮고 쪼잔 해지는 느낌이라 나열하고 싶지 않다. 기본적으로 미국 생활 전반은 날 지배하는 우울감과 싸우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른 이유들도 결국 비슷한 범주에 떨어질 것이다.
2월에 귀국해 3월 개학에 맞춰 첫째를 유치원에 보냈다. 셔틀을 타고 오가며 아침에 가서 오후에 온다. 봄이 다 지나도록 둘째는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둔 채 언제나처럼 나랑 지냈다. 애가 하나인 것도 신세계라며 스스로 토닥였다. 여름 초입에 들어설 무렵, 근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내년에 유치원 적응을 대비해 좀 더 큰 기관에서 시작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곳에선 지금 다니는 곳보다 한 달 늦게 연락이 왔다. 이미 적응훈련 중이라서 쿨하게 접었다. 어쩌면 작은 기관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사람이든 장소든 일이든 다 인연이 따로 있는 법이니 괜찮다. 아침마다 어린이집 빨리 가자고 보채는데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어린이집 출입 한 달이 훌쩍 넘은 오늘, 둘째가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가더니 정말 씩씩하게 "이따가 오세요!"라며 내게 배꼽인사를 했다. 박수를 쳐주고 칭찬을 쏟아붓고 돌아섰는데 울컥 눈가가 촉촉해졌다. 남편이 보면 그렇게 좋냐고 놀렸겠지만 이 마음은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나는 울지 않고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고 남편은 수고했다는 톡을 전했다. 곧장 주민센터에 갈 일이 있어 혼자 길을 걷는데 마음에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덥다. 시간 금방 가.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야. 그런데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강식당 비빔국수를 해 먹어봐야지 하고 간단히 장을 봐 돌아왔다.
비빔양념 소스를 끓이며 타닥타닥 브런치를 쓴다. 오늘부터 낮잠을 시도하기로 했는데, 이걸 쓰면서도 갑자기 입꼬리가 씰룩. 엄마 없이 자고 일어나고 하는 건 어렵지 싶은데, 혹시 성공할지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어 주말 내내 김칫국을 사발로 들이켰다. 필라테스를 끊어볼까. 영화관은 어디가 가까운가.
첫째도 아니고 둘째의 배꼽인사를 받은 오늘은 어디 적어두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날이다. 풀타임 엄마였던 나에게 혼자인 시간이 생겼다. 첫 아이를 낳은 이후 처음이니 무려 5년 6개월 만이다. 아직은 3시간 정도고, 혼자인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몸 둘 바를 모르다 겨우 밥 한 끼 혼자 차려먹고 집 치우다 끝나지만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달디 단 시간. 오랫동안 전혀 없다가 생긴 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간이다.
그래서 완성된 강식당 비빔국수. 면은 메밀면, 단무지는 썰기 귀찮아서 색만 같은 파프리카로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