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1학기 내내 하교 시간이 지나고 얼마 있지 않아 알림이 울리곤 한다. 첫째 아이 담임선생님의 알림장이다. 이렇게 아이가 학교에서 하는 활동에 대해 전해 듣는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1학기 초에 선긋기 하는 걸 보다가 한글과 셈 공부를 잘게 쪼개서 하고 있는 느릿한 진도에 심란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단순히 진도가 느려서라기보다는 초등교육이 지난 유치원 교육과 연결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갑갑함이다. 학기 초 비대면 학급 설명회에 접속해 들으며 1학년 교과과정은 놀이 중심으로 난이도 하향 예정이라는 말에 약간 황당하였다. 1학년에서 하향할 난이도가 갈 곳이 어디인지 난 알 수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학기 초에는 유치원보다 훨씬 쉬운 커리큘럼에 아이는 지루함을 표했다.
"숫자는 10까지 나오고 ㄱㄴㄷ 배우고 그래요. 더하기를 하는데 더해서 6 넘게 나오는 게 없어요. 아직 글자 잘 못 읽는 친구도 있어요."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설명하는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미리 1학년 교과서를 살펴본 것도 아니고, 영어를 제외하고는 딱히 선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는데 막상 마주한 1학년 과정에서 심심한 반응의 아이를 보자니 뭐라고 답할지 고민됐다. 코로나로 인해 복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는 게 어려운 아이의 첫 초등학교 생활이 아쉬운 와중에 자리에 앉아 듣는 수업마저 지루하다면 학교생활에서 무엇을 바라는 게 좋을까 생각했다. 물론 아이는 곧 친구들 보는 맛에 학교생활을 나름 즐거워했지만 오히려 나는 생각이 많았다.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학교가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호기심 넘치는 아이의 학교생활이 너무 이지고잉인 것에 시간이 아까운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예체능 학원만 다니다 보니 공부는 나와 집에서 하기로 했다. 온라인으로 레벨테스트를 해보고 교재를 고르고, 집에서 이용할 수 있는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사용한다. 푸는 건 풀지만 쓰는 걸 싫어한다. 일기장도 학교 제출용과 개인용이 따로 있던 나와는 다르게 뭘 쓰는 건 질색팔색. 그래서 다른 재밌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다. 아니, 이럴 거였으면 교대를 가야 했던 게 아닌가 싶고, 적어도 전공을 바꾸지 말았어야 하는데 싶다. 이렇게 두나 저렇게 두나 애들은 알아서 크겠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그저 학교 공부만 따라간다고 살만한 시대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결국, 시간이나 재원을 쏟아붓는 특별한 경험들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나름의 홈스쿨링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기 싫으면 이 책은 그냥 하지 말까?"
"할래요."
"왜? 하기 싫은 거 아니었어?"
"그렇지만 엄마가 권했으면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
하지 말라면 동의할 줄 알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날 당황시켰다. 하려고 앉기까지는 버퍼링이 있지만 막상 시작하면 하던 건 완료하고 싶고 아주 잘하고 싶어 하는 첫째의 반응. 초등학교를 시작하고 얼마 후 나는 첫째의 종합심리검사를 하러 상담센터를 찾았다. 아이의 성향을 더 정확히 알고 싶었고 내가 느끼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어떻게 돌봐줘야 아이의 삶에 도움이 될까 궁금했다. 섬세한 성격에 인내심이 많은 아이가 학습을 본격 시작하는 초등학생이 된다는 게 내겐 큰 고민이었다.
기질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내가 느끼는 것과 일치했고, 지능검사는 확실한 적성을 알아내기엔 치우친 영역 없이 고르게 나왔다. 그런데, 학습량에 대한 질문에서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아이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배움의 욕구가 높으니 하겠다고 할 때는 어느 정도 따라가 주라는 것이다. 본인이 하겠다고 할 때는 그게 꼭 참고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길을 선명하게 보고자 했던 검사지만 명확한 지도를 그려주지는 않았다. 아마 그건 무리한 기대였을 것이다.
"지금은 초등학교에서의 첫해니까 유치원보다 커다란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배우는 거야. 학교는 공부만 하러 가는 곳이 아니거든. 그리고 친구들은 다 다른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왔잖아. 아니면, 유치원에 안 다닌 친구들도 있을 수 있지. 네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외국에 있다가 온 친구도 있을 수 있고. 조금 더 다니다 보면 새로운 것도 많이 배우고 학교생활도 더 재밌어질 거야."
첫째에게 얘기해주며 내 마음이 되려 차분해졌다. 좀 지루하면 지루한대로 아이의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나 스스로 되새긴다. 2학기도 한참 지났다. 이러다 곧 2학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시간은 빠르게 스치는 중이다. 여전히 학교 공부 난이도는 잔잔하게 상향 중이지만, 최근에는 받아쓰기도 시작했다. 학교도 학원도 이제 루틴이 잡혀 마스크와 더불어 일상답게 매일 반복된다. 분주하지만 지루한 코로나 시국이 길고 길게 늘어지고 있다. 아이의 초등학교에는 2학기 들어 벌써 세 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처음보다는 담담하게 학교 공지를 확인하고 선제 검사 범위가 아님에 한시름 놓는다. 확진된 아이나 검사 대상이 된 아이들을 생각하니 심란하다.
아이가 1학년이면 엄마도 1학년이라던 말에 헛웃음 지었던 기억이 난다. 유치원 때와는 물론 다르다. 하지만, 어찌 생각하면 아이는 그때보다 겨우 한 살 더 많아졌을 뿐이다. 이런 생각들을 주절거리는 오늘이 얼마 지나지 않아 쑥스럽지 않을까 싶다. 얇은 귀보다는 잘 분별해 듣는 귀를 만들고, 아이와 통하는 마음을 갖고자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