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쉴 100가지 이유
상당히 설득력 있지만 쓸데없는
필라테스를 가서 50분 내내 생각했다. 나 이거 재등록해야 해? 새로운 동작이 새로운 고통을 줄 때마다 새롭게 고민했다. 마침 애도 다시 방학인데 한 2주만 쉬었다가 재등록할까? 코로나 확진자도 너무 많고 여기까지 오가는데 날도 참 춥고 말이지. 매번 애들 스케줄에 따라 운동 예약하기도 번거로우니 역시 홈트가 좋겠어. 사실 보수볼도 폼롤러도 마사지볼도 다 집에 있잖아. 심지어 게임으로 재밌게 할 수 있는 링핏도 있는데 그거면... 역시 홈트로 빠질 거였으면 살이 이미 빠지고도 남았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운동의 마지막 동작을 마치고 옷을 입으러 나오면서 무거운 입술을 뗐다.
"저 등록해야 해서요."
"재등록이요?"
"네."
"3개월이요?"
"네."
카드기에서 꼬물꼬물 뽑혀 나오는 영수증을 보는데 쟤는 자기가 무슨 의미로 저기서 나오고 있는지 알까 싶었다. 안녕? 나는 네가 태어남과 동시에 앞으로 3개월 간 운동을 다니게 될 거야. 진짜 가기 싫은 날도 네게 인쇄된 숫자를 떠올리며 레깅스를 집어 들겠지.
운동은 여러 가지로 이롭지만 이중성이 있다. 운동을 다닌다는 사실은 평소에 먹는 죄책감을 덜어주는데 막상 운동복을 입으면 이미 먹은 무언가를 두고 괜히 먹었다는 죄책감을 갖게 한다. 운동했으니까 먹어도 된다는 자아와 힘들게 운동하고 왜 먹었냐 묻는 자아 사이에서 와리가리 한 나의 세월이 얼마인가. 코로나 시국에 얻은 건 살이었으나 그나마 더 안 찐 것이 필라테스의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긴장성 두통까지 일으키던 나의 목과 어깨 통증이 필라테스와 함께 개선되는 바람에 차마 그만둘 수 없기도 하다.
"하아.."
"00님, 한숨 쉬신 거예요?"
"아...! 이건 그냥 큰 숨 정도..."
진짜 숨이 너무 차기도 한데 아직 운동 초반이라 나도 모르게 숨을 내뱉었는데, 한숨이냐고 묻는 필라테스 선생님 질문에 황급히 내놓은 내 대답은 저러했다. 내 말에 옆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대부분 세상 진지하게 운동에 집중하지만 이렇게 동병상련을 표현하는 인간적인 이들도 종종 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질문이었을 뿐인데 그냥 아무 대답도 안 하고 웃고 말걸 그랬나 생각했다. 헛소리는 어쩜 뇌도 안 거치고 잘만 나오는지 모르겠다.
"흐익! 선생님, 저 머리 좀 묶을게요. 무슨 대역죄인이 돼서요."
"대역죄인이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예전 필라테스 수업 중에 쥐어뜯긴 듯 풀린 머리를 묶으며 쓸데없는 소리 했다가 선생님이 하하하 흐흐흐 거의 흐느끼며 웃었던 민망한 기억이 떠올랐다. 진짜 거울 보고 사극에서 본 듯한 내 모습에 놀라서 한 말이었는데 선생님에게도 내가 확신의 대역죄인 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입만 부지런하구나. 게으른 걸음을 부득이하게 빨리 옮기며 집을 나섰다. 방학 중인 첫째는 태권도로 나는 필라테스로 향한다. 운동을 그만둘 이유가 아무리 100가지 인들 운동을 다닐 이유 몇 가지에 비해 너무 하찮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어? 중간에 멈추실 줄 알았는데, 끝까지 하셨네요! 지구력이 정말 많이 느셨어요."
선생님의 카운트에 맞춰 동작을 마치고 철퍼덕 뻗은 내게 건넨 선생님 말에 갑자기 의지를 불태운다. 나 칭찬 좋아하네? 이번 3개월은 지구력만 늘릴 게 아니라 무게를 줄이는 걸 목표로 하자. 결제했다는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운동을 그만 둘 100가지 이유는 3개월 후에 다시 떠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