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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Jan 30. 2020

오래 살자

장수의 꿈

작년에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장수의 꿈을 이루고자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러자 몸이 왜 안 하던 짓 하냐며 반발했다. 담이 왔는지 숨이 가빴다. 크게 숨을 쉬면 숨이 가슴에 다 담기지 못하는 듯 어딘가 욱신대는 통증이 지속됐다. 검사까지 해봤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없다. 신기하게도 어디 아픈 게 아니라는 불안감이 해소되자, 그 통증조차 내가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뿌듯함이 됐다. 식이요법을 병행하지 않으니 딱히 몸에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운동은 내게 멋진 위안이 된다. 언제라도 먹는 걸 줄이면 살이 쏙 빠질 거라는 확실한 희망이랄까.


필라테스 수업을 받고 있으면 정말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의 굳은 어깨에서 힘을 풀어야 하고 배와 엉덩이는 꽉 잡고 자세를 잡아야 한다. 딴생각하다가 혹은 아프다고 꾀를 내다가 힘을 풀어버리면 허리나 무릎이나 손목에 무리가 간다. 어깨는 뭐 이렇게 심하게 말렸고, 다리는 왜 반듯하지 않으며, 등과 팔에는 근육이 1도 없네. 이 비루한 몸으로 어찌 버텼나 싶게 망가진 상태를 낱낱이 들키고 나니 차라리 개운하다. 할 일이 새롭게 주어진 기분. 이제 보니 운동은 아프지 말아야 할 곳이 심각하게 아파질까 봐 꽤 아픈 행위를 견디는 것이다. 배가 활활, 다리가 활활, 팔이 활활. 이 불붙는 고통이 내 건강을 지켜주길.


초등학생 때의 난 냉면처럼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 했지만, 지금의 난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소방호스처럼 굵고 튼튼하게 긴 삶을 살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 오늘 지구 상에서 우리 애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니까. 우한 폐렴이 아무리 유행해도 절대 걸리면 안 된다. 열심히 조심하는 중인데 이 정도의 열심이 과연 충분할까 싶긴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어쨌든 손 열심히 씻고 마스크를 잘하자.


마스크는 돌하르방보다 잘 하자. 코를 막아야 한다.


“네가 살림을 안 해봐서 모르나 본데 바쁜데 심심해.”


멜로가 체질에서 내가 가장 공감한 한 마디가 바로 저 대사다. 살림이 체질인 사람이 있을까. 예전에는 정말 애들 재우고 새벽까지 살림을 했다. 이제 낮에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흩어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애들 재우고서야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는 일이 잦다. 그렇게 바쁜데 난 심심하다. 어떤 날은 적적함에 내 몸이 방바닥에 액체 괴물처럼 녹아 붙는 상상을 한다. 날 둘러싼 시끌한 소음들이 귀에 들어와 몸속을 휘젓고 다니는 상상을 한다. 나가서 사회적 인간이 되고 싶은데 그럴 시간도 만날 사람도 애매한 날들이 더 많다.


설 연휴를 앞두고 윗집에 누수가 생겼다. 거실에 깔려있던 거대한 놀이방 매트 두 장이 마룻바닥을 살리고 더러운 물을 다 머금은 채 전사했다. 누수가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나고서야 시작된 공사로 지금 막 우리 집 천정이 다 뜯겨나갔다. 그래서 난 온 창문을 열어둔 채 두꺼운 롱 패딩을 입고 랩탑 앞에 앉아있다. 이 일로 쉬이 약속을 잡지도 운동을 하지도 못하고 대기 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 도배까지 한다는데 애들을 보낼 외갓집이 멀지 않아 다행이다. 자식이 결혼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부모의 굴레. 공사하는데 애들을 둘 수 없다고 오후 보육을 자원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미안한 마음에 헛웃음이 난다. 미국에 있으면 있는 대로 걱정이었다는 부모의 마음. 내 그릇에 무슨 깡으로 엄마가 됐을까 싶다.


마음의 이상은 곧 몸의 이상으로 온다. 몸의 이상도 마음의 이상을 거든다. 미국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면 해당 병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긴 몇 장의 종이를 주는데 대부분 잔병치레에 불과한 내겐 항상 스트레스를 줄이고 휴식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곤 했다. 심지어 안구건조증에도 스트레스가 언급된다. 내가 쉬면 애들은 누가 키우나. 틈틈이 재발하는 역류성 식도염에 좋아하는 커피와 빵을 못 먹을 때도 있고, 만성비염으로 오락가락하는 내 코는 이비인후과를 집처럼 드나든다. 신경 좀 썼다 싶은 일이 있으면 도지는 긴장성 두통이 목덜미를 조여 최애 두통약을 찾고, 피곤하다 싶으면 목이 부어 침 한번 삼키는 게 아프다. 어디가 크게 아프지는 않지만, 더 크게 건강하고 싶다. 언제든 삶에 등장할 수 있는 외로움과 우울감을 누를 마음의 근육들을 충분히 마련하고 싶다.


집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주일째 운동을 가지 못했지만, 다음 주엔 운동을 4회나 예약했다. 몸의 근육들이 내 마음을 한껏 거들어주길 바라며. 부디 취소할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어느덧 천정에 석고보드를 붙이고 계신다. 얼룩진 천정을 내내 보며 불안하다 깨끗한 보드를 보니 기분이 나아진다. 물이 새던 우리 집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우한 폐렴은 어서 잦아들고, 모두가 모두의 계획대로 2월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혹, 계획보다 더 마음에 드는 2월을 맞이했으면.


요새 운동한다고 참았는데... 어젠 스트레스 받아서 요만큼 먹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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