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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Jul 15. 2020

집으로 가는 길

부린이의 탄생

"안녕하세요! 오늘 아이들 등원 안 하나요?"


셔틀 선생님의 전화에 눈을 번쩍 떴다. 알람을 오후 7시로 맞춘 나는 등원 셔틀을 놓치고 아이들을 직접 등원시켰다. 집에 돌아오는 길, 차창에는 비가 확 쏟아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출근하기 전에 동네 병원 간다던 남편이 비를 맞겠구나. 우산을 챙겨 데리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핸들을 꼭 잡고 신호를 기다리는데, 어릴 적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이면 학교 앞에 우산을 들고 기다리던 엄마가 생각났다. 친구랑 노는 게 더 좋아졌을 무렵이지만 갑자기 엄마와 함께 따뜻한 집으로 향하는 하굣길은 대단한 이벤트처럼 기다려졌다.


"엄마가 왔어, 엄마가!"


마치 훨씬 더 어릴 적처럼 학교 앞에서 만나는 엄마는 반가웠고, 어쩐지 스스로가 안전하게 느껴졌다. 엄마와 우산을 쓰고 집에 돌아와 현관을 열면 몸이 샤르르 녹는 그 느낌이 그렇게 좋았다. 밖은 비가 오고 춥지만, 난 따뜻한 거실 바닥에서 엄마가 만든 간식을 물고 뒹굴거리는 그런 순간. 학교도 친구도 다 좋지만 엄마가 날 데리러 와줘서 더 좋은 날.


초등학교만 4군데 다닐 정도로 이사가 잦았던 나는 그 이후로도 3개의 중고등학교를 거쳐 2개의 대학을 다니고서야 학업을 마쳤다. 학창 시절과 결혼생활 중에 두 번의 해외생활을 했으니 사실상 한 동네에 제대로 정을 붙여본 적이 없다. 초등학생 즈음부터 내가 기억하는 이사부터만 세어봐도 지금 내가 앉은 이곳이 15번째 집 정도. 누가 내게 어디서 자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울의 변두리부터 한복판까지 다 살아봤고, 멀리는 강원도 영월까지 살아봤는데 어딜 꼽아야 할까?


동네에 어릴 적 친구가 있고 단골집이 있는 그런 삶은 늘 내 로망이었다. 아빠의 공부가 끝나기는커녕 군대도 가기 전에 결혼한 엄마는 이삿짐을 수십 번 싸서 세지도 못하겠다 하신다. 돈이 너무 없던 시절이라는 아빠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낯선 교실과 친구들에 매번 적응하는 것은 내성적인 내게 매번 긴장되는 일이었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볼을 가진 어릴 적 나는 그 얼굴로 순하기까지 해서 어렵지 않게 친구들과 친해지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더 친절하고 좋은 아이여야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사를 가면 진정 끝이라고 여겨진 그 시절 친구들과의 이별은 매번 마음을 슬프게 했다. 친구와 주고받은 오그라드는 작별의 편지도 친구가 쥐여준 작별의 오렌지주스도 그때는 잠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만한 중대사였다.


나의 결혼과 함께 엄마 아빠가 있는 집은 내 친정이 되었고 이제 내 집은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요즘 나와 남편의 대화는 98% 부동산 이야기다. 난 정말 해맑기 그지없었던 부동산 무식자에서 “부린이”로 첫걸음을 뗀 셈이다. 한데, 걸음은 뗐는데 갈 곳이 없다. 새로 나오는 뉴스를 훑고 유튜브로 보고 듣고 여러 개의 부동산 앱을 오가며 매물을 조사하고 비교하며 연일 추가되는 정책들을 익힌다. 무려 부동산 책도 주문해서 읽기에 이르렀다. 그렇게까지 알 필요 있나 싶었던 부동산 세계에 내 마음이 휘청거리는 날이 올 줄이야. 문자, 숫자, 그래프.


"와, 자기가 드디어 물욕이 생겼구나!"

"그런가 봐. 아파트가 갖고 싶네."


남편 말에 그냥 픽 웃지만 웃음이 쓰다. 나더러 물욕 없는 게 이해가 안 된다던 남편은 부동산 열공하는 내가 신기한 모양이다. 비 오는 날에 아이들과 숨어들 우리 집은 어디 있을까? 첫째가 내년엔 무려 초등학생이 되는 나의 아이는 나와 다르게 한 곳에서 키우고 싶은데, 우리가 이사온지 1년 반도 안 돼서 무려 30% 오른 이 낡은 아파트의 전세가를 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어둑하다. 양가가 멀지 않고 남편 출퇴근도 무리 없고 너무 과하지 않게 아이들 키우기 좋은 곳. 가본 적 없는 낯선 동네들까지 뒤적이며 답 없는 고민을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며 나름의 계획과 꿈을 가지고 일상을 얘기하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의식주의 "주"가 이렇게 우리를 바꿨다. 아파트 그까짓 거 뭐 더 준비해서 사고 싶을 때 사면된다고 쿨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치솟는 집값과 바뀌고 소급되는 정책을 걱정하지 않고 천천히 숙고하고 계획해서 집을 마련하는 뿌듯한 과정을 밟고 싶다. 너덜거리는 정책만큼 내 마음과 우리 부부의 대화도 너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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