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온함을 추구한다. 자칫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성정 탓에 과부하를 막기 위해 그런 노력이 꼭 필요하다. 내가 종일 기다린다고 볼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아이들이 잠들고 혼자 고요하게 보낼 수 있는 밤. 어제는 <튤리>를 보고 울컥한 날 다독이고자 밤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쓰기로 했다.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가 그리운 시즌인가 보다. 토요일에도 유치원에 가고 싶다던 첫째는 요즘 엄마랑 있고 싶다고 부쩍 어리광을 부리고, 둘째는 어린이집 갈 때마다 눈물바람이라 남편이 들어서 옮겨주지 않으면 등원이 어렵다. 녀석들이 다 큰 것 같다가도 이런 모습을 보면 역시 아직도 아기들이구나 싶어 애잔하기도 했다가, 그런 아이들을 재우고 영혼이 털린 채 방을 빠져나온 내가 애잔하기도 하다.
아이들 재운 후 꿀타임에 아빠와 2시간 반에 걸친 통화를 했다. 정말 특이한 날이다. 한창 젊을(?) 때는 남자 친구와 밤새 통화할 수 있었고, 베프와는 몇 시간쯤 가뿐하게 통화할 수 있었지만, 아빠와 이런 긴 통화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와의 수다는 깊어지는 반면, 아빠는 엄마와 통화할 때 옆에서 스치듯 만나거나 아빠의 각종 전문분야(?) 상담일 때 바꿔달라고 하는 정도다. 내가 영 살가운 딸은 못 된다는 걸 깨닫는다. 어제도 역시 뭘 여쭤보느라 전화를 했다가 아빠의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통화는 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날 위해 쓰기로 한 오늘의 자유는 아빠와의 통화에 털어 넣은 셈이다. 참 좋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1년은 늘 조급하고 불안했다. 미국에 살며 미뤄뒀던 현실적인 고민들이 쌓여갔고 나는 때로 침착함을 잃었다. 아이의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내년이면 보낼 초등학교도, 집도, 내가 나아갈 길도 다 혼란스러웠다. 미국 다시 갈까? 남편과 그런 진담 같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친정에서도 가끔 불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그때마다 엄마 아빠는 조급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빠와의 긴 통화는 원래의 목표를 넘어 수다처럼 이어졌고, 아빠는 수고로웠던 아빠의 삶을 덮어두고 다정하게 내 삶에 응원을 건넸다. 난 아빠가 날 모른다고 주장해왔지만 아빠는 생각보다 나를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튜니는 가끔 자신의 속을 꿰뚫어 보는 나에게 놀란다.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묻는다.
"엄마, 왜 엄마는 다 알아요?"
"그냥 원래 그래."
오늘도 조급한 나를 다독인다.
난 어릴 때부터 내가 아빠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얼굴을 보면 누구나 내가 아빠의 친자임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 외에 성격도 참 많이 닮았음을 깨닫는 중이다. 닮아 좋은 것도 있고 닮아 신이 나지는 않는(?) 애매한 것도 있다. 엄마가 가진 특징들도 가져와 이렇게 저렇게 버무린 다음, 그게 다 섞이면서 태어난 새로운 특징들이 나를 만든다. 내가 유전자를 받아 나왔고 그 속에서 자라온 환경이니 당연한 일이다. 아빠가 없었던 아빠는 롤모델이 없어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참 애썼다고 했다. 지금의 나는 틈틈이 전한다. 나는 참 좋은 아빠를 만났다고.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도 생각나는 대로 꺼내야겠다. 심청이로 시작해 흥부로 끝나는 아빠의 이상한 전래동화도 캐나다에서 받았던 아빠의 긴 편지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고. 그때는 그 마음을 지금보다 아주 조금 덜 깨달았을 뿐, 어른이 되겠다고 휘청거릴 때 날 튼튼하게 짓느라 그 마음을 소중하게 꺼내 썼다고.
예전에는 아빠가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희망사항들이 있었다. 삐쳐서 집 분위기 며칠을 얼음장으로 만들지 않으셨으면, 이럴 때는 아빠가 엄마를 좀 더 도우셨으면, 담배 좀 끊으셨으면... 많은 것들을 간절히 바라곤 했다. 사실 여전히 바라는 것들이 있다. 아빠로부터 받고 누리는 게 많은데도 그런 바람은 끊임없이 생겼더랬다. 딸이라 그런지 엄마 편에서 아빠를 바라보게 되는 면도 있었다. 내 아이들을 품에 안고서야 좋은 부모라는 게 단순히 애쓴다고 되지 않는다는 걸 절절하게 깨달았다. 내 아이도 완벽하지 않다. 나 또한 얼마나 부족했을까. 나의 부모님이 참고 넘어갔을 수많은 나를 대면한다.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한 부모가 있고 완벽한 아이가 있다면 그거야말로 무서운 일이다. 아빠는 최선을 다했고, 난 그걸 잘 알고, 지금 아주 따뜻하다. 우리는 지금껏 서로 애쓰고 있는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걸음이 무섭다. 태어난 지 갓 6년 된 첫째는 벌써 엄마인 내가 100살에 하늘나라 갈까 걱정인데 (얘야, 그 나이면 진즉 가는 게 맞아...), 수십 년 나이 먹고 무뎌진 내 마음도 부모님의 시간은 숨이 턱 막히도록 두렵다. 남의 결혼식에서도 새 신랑이랑 사연 있는 여자 마냥 곧잘 우는 나는 그런 일 앞에선 숨도 못 쉴 것만 같다. 한데, 자식이 있으면 못할 게 없다던 엄마 말씀이 떠오른다. 그래, 숨을 못 쉬진 않겠구나. 이 내리사랑은 어떻게 창조된 걸까. 요즘 미운 일곱 살 답게 업그레이드를 거듭하는 첫째를 꼭 안고 뽀뽀하고 사랑한다 말해주며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눌렀던 오늘의 기억이 떠오른다. 방을 나와 뒤늦게 보니 둘째가 그 순간의 나와 첫째를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그걸 또 찍었냐 싶어 웃기기도 하고, 왜 이번처럼 참고 사랑해주지 못하는 날이 많았을까 눈물도 났다. 내가 아무리 순한 딸이래도 아빠가 보기에 어이없는 짓 많이 했겠지. 날 참아줬을 많은 순간 속 아빠에게 감사한다. 아빠, 저 아들만 둘 낳아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다음에 또 통화해요.
아빠, 셀카봉 때문에 얼굴 나오게 못 찍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