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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보기만 해도 좋은 시절

언젠가 엄마를 향해 뛰었을 나의 날

by 미미

복복이의 학원 가방을 들고 집을 다시 나섰다. 아이들이 자라며 이런 수고는 줄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에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매일 다른 녀석들의 시간표에 매주 인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두 아이의 스케줄은 내 오후는 잘잘하게 조각내둔다. 중간에 병원이라도 갈라치면 시간 계산은 좀 더 치밀해야 하고 동선도 효율적이어야 한다. 둘의 다른 스케줄이 충돌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커버 가능해야 하는 상당한 난도를 자랑한다.


피아노레슨을 마친 복복이가 저 멀찍이 보인다. 복복이는 나를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우다다다 뛰어오기 시작했다. 학원이 늦은 것도 아니고 급한 일도 없는데 늘 별 이유 없이도 엄마를 보면 뛰어온다. 저렇게 좋아하고 빨리 다가오는 마음에 갑자기 뭉클해졌다. 방금 전에 아빠의 칠순 현수막을 펼쳐놓고 울컥하다 나온 참이라서인지 모성애가 과도하게 발동한 걸지도 모르겠다.


복복이의 손을 잡고 눈이 가장자리로 치워진 길을 걸었다. 묻지 않아도 오늘 눈싸움의 경기내용을 읊어대던 복복이는 아무래도 이따 저녁에 집에 가서 그림을 그리며 설명해야겠다며 설명을 멈췄다. 사실 경기 내용이 궁금하지는 않지만 복복이는 엄마가 궁금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묻지도 않은 저 이야기를 저렇게나 열심히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은 나이가 언제까지일까 생각이 드는 순간, 귀엽게 날 올려다보는 복복이의 에 울 뻔했다. 어휴.


우리 부모님은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딸에게 자주 연락하지 않으신다. 나는 부모님이 편하지만 막 편하지는 않아서 조심하는 편인데 이게 신기하다는 얘기도 들어보았다. 특히, 엄마와 딸은 마치 친구처럼 티격태격하고 절친처럼 친하게 붙어 다닐 것 같은데, 왜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경우 말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엄마는 세상 소녀 같아 보이고 늘 따뜻한 말을 건넬 것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분명 TTTT로 추정되는 나의 어머니는 내게 한 번씩 직격타를 입히시는 편이다. 가끔 강도가 세면 상처를 입을 때가 있는데, 나는 내색하지 않고 넘어간다. 문제는 내색은 안 했어도 마음에 남기게 된다는 점인데, 엄마는 내가 타격을 입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실 거라 끝내 말은 꺼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는 게 아니다 보니, 따져봐야 크게 의미가 없다고 스스로 설득하고 넘어갈 뿐이다.


지금도 종종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복복이처럼 막 뛰어가 안기고 싶은 정도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체면치레를 하는 걸 수도 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 표현하자면 다가가서 살짝 같이 걷고 싶은 느낌일 때도 있고, 마주 앉아 뭔가 먹으며 시답잖은 얘길 나누고 싶을 때도 있다. 지금은 애들이 좀 크고 예전처럼 힘들진 않지만 솔직히 애들 좀 봐달라고 맡기고 싶은 날도 있고, 그냥 같이 와서 있어달라고 하고 싶은 날도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애매하게 말하는 이유는 그럴 생각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조카를 부모님께 맡기고 외출하는 동생을 보면 부럽기도 조금 슬프기도 하다. 둘을 데리고 쩔쩔매던 수많은 날들... 왜 나는 부모님께도 쉽게 부탁하는 성격이 못 되는 걸까?


복복이가 활짝 웃으며 내게 뛰어오는 모습을 보다가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엄마에게 저렇게 뛰어가던 날이 있었을까? 아마 있었겠지? 보고 또 봐도 엄마가 보고 싶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보고 있을 때는 울다가 엄마가 문밖으로 사라지면 눈물을 그치고 다시 엄마가 들어오면 다시 울음을 재개했다던 어린 나는 분명 엄마를 심각하게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날 봐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눈물을 짜냈던 게 아닐까 상상한다. 그럼 나라는 아이와 나라는 엄마는 과연 다를까? 나라는 아이와 나의 아이들은 다를까?


어떻게 아이는 어른이 되고 엄마를 덜 봐도 괜찮아 지다가 자주 못 봐도 괜찮아지는 걸까? 시간이 흘러감을 대비한 일종의 준비인 건지 좀 더 높은 차원의 생존 방법인 건지 몰라도 가끔 세월은 참 섭섭하다. 아버지 칠순을 맞아 현수막을 준비하고 가족사진 찍을 스튜디오를 알아보고 선물을 사러가며 마음이 이상했다. 부모님의 세월만큼 나도 늙어가지만 결코 좁혀지지 않는 시간이 슬퍼졌다. 내가 걷는 만큼 더 앞서가는 부모님의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다. 내 안에 질문인지 의문인지 모를 물음표들만 늘어난 바쁜 주말이다. 그런 불분명함을 떠나 이번 주말의 칠순모임은 적어도 내가 참으로 그리워할 하루임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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