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발로 가겠다는 애를

결국 보내면서도 남겨두는 심경글

by 미미

이번 달부터 나는 10시에 동동이 픽업을 간다. 그곳은 바로 새로 다니게 된 수학학원이다. 라이딩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근처 학원 위주로 보내던 나인데 결국 유명한 그 수학학원에 픽 드랍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학 선행을 시켜달라는 아이의 요구에 동네 학원을 겪어보기를 1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단지 내 수학 공부방에 정착했다. 이제 진도를 착실히 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동이는 친구들 몇이 다니는 그 유명한 동물 이름 수학학원을 추가하겠다고 졸랐다.


그 학원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예전에 조카가 수학을 잘해서 그 학원 탑반이라는 소식을 건너들은 날이다. 학원이름이 재밌네 하고 말았는데 몇 년 만에 그 학원 이름은 아이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엄마, 저는 빨리 초등학교 진도 공부방에서 마치고 중학교 수학은 거기 다닐 거예요."

"어? 뭐... 그래."


자기 발로 다니겠다는데 학원이 어떤 곳인지 슬쩍 두드려보았다. 자꾸 거길 가겠다고 예고하는데 내가 알고는 있어야지 않겠나. 매년 겨울이 오면 전국에서 수천 명이 시험을 보는 인기 학원인 데다 중간에 열리는 편입시험의 경우 우리 동동이는 지원할 과정이 없었다. 지금 속도로 진도 나가서 어느 반에 들어갈 수 있는 거지? 난감한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마침 열린 레벨테스트를 경험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시험은 쉽다 보니 거의 다 맞아 오는데 학원 시험이 아니고서는 아이의 심화 수학을 확인할 곳이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마침 4학년 심화학습까지 끝난 4학년이 볼 수 있는 시험이 근처 지점에 있었다.


"이건 동동이가 배운 진도까지니까 시험은 볼 수 있겠다. 시험이나 한 번 볼래?"

"좋아요. 6학년까지 끝나면 중학교 수학부터 거기 다닐 거예요."

"음, 그런데 솔직히 지금 진도로 그때 동동이 학년이 볼 수 있는 중학과정 시험이 있을지는 모르겠어."

"일단 시험 볼게요."

"그래, 어떤지 경험해 보는 건 좋지."


아직 수학 심화 진도를 현행까지만 나간 상태인데 그 학원에 볼 시험이 있는 게 의외라 겪어 보자고 본 테스트였다. 이때만 해도 아이는 나중에 더 진도 뺀 다음 중학교 수학 때 도전할 거라 이번엔 참고용으로 보는 거라 했었는데, 녀석이 이상하게 결과를 너무 기다렸다. 막상 현행반에 합격했다는 말에 대뜸 수학을 두 개 다니겠다며 등록해 달란다. 그리고, 등록 기한을 앞두고 아이와 며칠간 설전이 벌어졌다.


"엄마, 수학을 잘하는 애들은 다 거기를 다녀요."

"그렇지만 공부방을 다니면서 거기까지 다니면 너무 힘들지 않겠어? 그럼 공부방을 끊고 동물 학원만 가는 게 어때?"

"안 돼요. 둘 다 다닐 거예요. 6학년 진도는 계속 나가고 싶어요. 우리 공부방에도 거기랑 같이 다니는 애들 많아요."

"3교시는 결국 10시에 끝난다던데 잠을 너무 늦게 자잖아."

"그래도 할래요."

"......"


예전에는 9시 반, 최근엔 10시 전에 아이들을 재우는 게 목표인 나에게 10시 넘어 픽업하는 학원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 시간에 애를 픽업한다기에 어떻게 그 시간에 마치냐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한데, 그렇게 늦게 마치는 학원에 등록하게 되다니.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배움을 위해 학원을 가겠다는데 별 수가 있나. 어떤 부모가 아이가 수학학원 보내달라고 조르는 상황에서 결사반대를 할 수 있냐 말이다. 며칠 고민하던 나는 결국 마감일에 동물 학원 등록을 했다.


첫 수업을 마치고 은근한 재미가 있다는 오묘한 소리를 하던 동동이는 두 번째 수업 전날엔 잠을 청하며 빨리 학원에 가고 싶다는 희한한 소리도 했다. 좀 더 지나 봐라 싶은 마음의 소리는 마음에만 두고 빨리 자기를 권했다. 생각하면 풀 수 있는 문제도 그냥 별표 쳐오는 아이에게 이 학원이 도움이 되리라는 수학 공부방 선생님의 조언에 나도 공감했기에 몇 달만 다녀봐도 얻는 게 있으리라 결론지었다.


첫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고 맞은 주말에는 교육청 영재원 시험을 보았다. 이번에는 학원 레테와 달리 여러 절차도 있고 전형료도 내야 하는 시험이다. 이것 또한 영재원 시험을 보게 해 달라는 아이의 요청이다. 추운 아침 바람을 뚫고 아이를 시험장에 데려다주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휙 들어가는 녀석을 보는데 많이 컸다 싶었다. 동동이는 몇 시간 걸린 시험이 끝나자 그곳에서 우연히 3학년 내내 붙어 다니던 절친을 만나서 신나게 수다 떨며 나왔다. GYM에서 Child Care에 잠깐 맡기고 운동만 하려고 해도 토할 때까지 울며 엄마를 찾던 다섯 살 동동이는 이제 두 배의 나이가 되어 (몸무게는 두 배 이상이 되어)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은 큰 애가 되었다. 무엇보다 수학을 잘한다는 얘기가 듣고 싶은 4학년 남자아이가 되어있다.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는 선행도 학원도 이번에 추가한 학원도 사실 자의에 의해 다니기 시작했는데, 좀 더 일찍 해주었다면 좋아했을까? 동동이가 수에 감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뛰어난 정도는 아니라는 내 생각에 아이를 너무 멋대로 판단한 게 아닌가 싶었다. 반대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두 군데 수학학원을 동시에 보낼 게 아니라 엄마인 내가 과하다고 설득해서 하나만 보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이 남는다. 애가 원한다고 두 군데를 다 보내는 내 결정이 맞는 걸까?


고학년 동동이가 동물 학원과 첫 만남을 갖는 동안 저학년 복복이는 다니던 사고력 수학 학원을 1년 만에 끊었다. 내년 교과와 함께 사칙연산부터 제대로 하고 넘어가겠다는 결론이다. 동동이는 사고력을 보내지 않았지만 동물 학원에 붙긴 붙었으니 결국 수학머리가 있는 녀석은 한다고 본다. 복복이의 사고력 선생님은 좀 더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주셨다. 이해력이 좋으니 사고력을 병행하면서 연산을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거라는 조언을 남긴 통화는 내 마음을 바꾸진 못했다. 아이가 수학적 이해력이 좋다고 특별히 느낀 적이 없고 사고력 수학 문제랑 씨름하는 시간에 더 중요한 여러 기초를 탄탄하게 다질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복복이는 이번 겨울 방학은 영어학원만 유지하고 사고력 수학 숙제에 치일 시간에 각 영역별 기초를 다지고자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여기엔 글씨 교정과 독서도 포함이다. 방학에는 일단 내년 수학진도를 남편에게 맡겼다. 풍부한 과외 경력으로 제법 잘 가르치는 데다 친자식에게도 이성을 유지하는 참스승이라는 장점이 첫째 동동이를 가르칠 때 증명됐.


"복복아, 사고력 수학 끊기 싫었어?"

"네, 계속 다니고는 싶은데요. 엄마한테 허를 찔렸어요. 선생님이 재밌어서 가고 싶은 거거든요."

"그게 안 되는 건 아니야. 학원인데, 선생님이 재밌어도 수학이 아예 재미없었으면 싫어했겠지. 그래도 복복이가 사고력 숙제는 잔소리 별로 안 해도 앉아서 혼자 잘 풀어서 좋은 습관을 배웠다고 생각해."

"그건 그래요. 근데 제가 생각해도 연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사고력은 잘하는 것 같은데 제가 반에서 연산은 느린 편이거든요."


복복이는 솔직한 편이다. 덜렁대며 급하게 푸는 연산 문제에는 빈칸마저 발견되고 글씨는 지렁이가 되어 0인지 6인지 숫자도 알아보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늘 인정이 빠르다. 동동이와 달리 복복이에게 사고력 수학을 시켜보니, 그런 커리큘럼의 유익한 면이 분명 있음에도, 기본적인 셈과 개념을 익히는 것에 시간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과목도 늘어나는 3학년을 앞두고 챙겨야만 할 부분들이 너무 잘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녀석은 형아가 가니까 자기도 내년엔 동물학원 시험 볼 거란다.


"저도 내년에는 동물 학원 시험 봐야죠."

"너도 가고 싶어?"

"근데 지금은 3학년 수학 안 배워서 못 본다면서요. 내년에 보려고요."

"아... 뭐 꼭 이 학원 시험을 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목표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수학이 싫다면서 형아는 왜 동물 시험을 자기 발로 가냐고 이상하다던 복복이는 막상 형아가 등록하고 다닌다니까 자기도 시험을 보겠다는 소리를 한다. 알 수 없는 우리 아들들의 세계에 혼란한 와중에 남편은 말했다.


"그래도 애들이 뭐든 스스로 하려고 드니까 좋은 거지."

"그건 그래."

"가서 좀 잘하는 애들한테 치여봐야 정신을..."

"여보..........?!"


동동이는 세 번째 수업을 마치고 차에 올라타며 숙제가 많다고 말했다. 네 번째 수업을 앞두곤 숙제가 급해 졸려하며 숙제를 한다. 쭉 다니게 될지 끊게 될지 모르겠다. 계속 재밌다고 할지 곧 재밌다는 말이 쏙 들어갈지 그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이 다니겠다고 한 만큼 지난 2주간 특별히 군소리가 없어서 좋다. 수학 노트 필기는 생전 처음 보는 깔끔한 모양새라 깜짝 놀랐다. 남편도 지나가며 동동이의 노트를 보고 깜짝 놀란다. 쿠폰과 벌점 등 여러 가지 규칙이 많은 데다 늦게 끝나는 이 학원이 괜찮을까 싶었지만, 솔직히 동동이가 동물 학원에 몇 달만 다니고 끊는다고 해도 나는 만족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런데도 막상 10시에 운전대를 잡으며 생각한다. 이게 맞나? 훗날 어떤 사람이 되든 열심히 공부하고 성취한 경험이 쌓이는 건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아직 잠은 더 일찍 재우고 싶은 엄마 마음엔 한숨이 스민다.


이 기록은 나중에 혹시 내 마음에 (내 공부도 아닌데) 한테 과한 욕심이 생길까 남기는 글이기도 하다. 자기 발로 가겠다는 녀석이라 보냈다는 걸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