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단위의 행복
정말 자야지 싶은 늦은 시각, 남편의 종아리 밑에 쓱 내 발을 밀어 넣자 자기 전 웹툰을 보던 남편이 깜짝 놀란다.
"크크, 차갑지?"
집이 냉방도 아닌데 내 손발은 겨울만 되면 쉬이 차다. 남편 주머니나 아이들 손은 종종 나의 손난로가 된다. 자려고 누웠을 때 남편이 있는 날의 장점은 그와의 드립 대결뿐 아니라 곁에 느껴지는 온기다. 남편은 냅다 발부터 파고드는 내게 뭐냐고 웃더니 자세를 바꿔 내 발을 다정히 덮는다.
"등 좀 긁어줘 봐."
"(벅벅) 시원하지?"
발난로의 등을 최선을 다해 시원하게 긁어준다. 어릴 적 기억에 엄마가 아빠 등을 그렇게 긁어주던데 내가 그러고 있다. 등이 안 간지러워도 누가 긁어주면 마치 간지러웠던 것처럼 시원하다는 걸 발견하고 얘기해 준 친구가 떠오른다. 등 긁을 때마다 이 얘기가 생각난 탓에 이제 확신에 이르러 다른 이들에게 설파하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내 등 또한 그러하고 우리 아이들 또한 그렇다고 한다.
"엄마, 진짜 안 간지러웠는데 긁어주시면 엄청 시원해요!"
간지럽지 않아도 누군가의 손길에 기분 좋은 시원함 말이다. 난 이게 다정한 온기가 불러온 기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손길이란 그렇다. 남편이 데워준 발이 따뜻해지자 시린 느낌이 가시며 잠이 스르르 온다.
"자기 먹으라고 사 왔지."
"어우, 살찌는데..."
남편의 출장길엔 그 지역의 빵이 함께 돌아오고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면 내 초콜릿도 함께이다. 살찌는데 초콜릿을 또 샀냐고 물어도 다음 날이면 하나씩 야금야금 꺼내 먹는다. 남편 입장에서야 앞으로도 사 오라는 건지 진짜 사지 말라는 건지 헛갈릴 법도 하다.
얼마 전엔 친구와 얘길 하다 셀프 탐구 결과를 나눴다.
"인간이든 물건이든 내 취향은 다정함인 것 같아. 난 다정한 말투가 좋아. 길 가다가 나랑 상관없는 누군가가 주고받는 대화가 따뜻해도 좋은 기분이 내게 묻는 것 같아서 좋고."
마음의 온기에 대한 열망은 내 삶 전반에 깔려있다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 딱히 애정결핍은 아닌데 늘 시끄럽고 예민하고 복잡한 머리를 가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말의 내용만큼 중요한 게 말투고 그 말투만큼 중요한 건 다정함이 묻어나는 따뜻한 행동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꾸준한 다정함을 쏟는 상대에게 결국 호감이 생겨 교제를 수락한 적도 있으니 아주 사소한 다정의 누적에 취약한 인간임이 분명하다. 뜨거움에 반하지 않는 복잡한 나를 녹아들게 하는 건 진득한 햇볕이다.
좋은 사람과 닿는 온기는 다정하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가족에게 두 팔 벌려 닿으려 한다. 포옹까지 아니라면 어깨라도 쓸어주고 싶어 손을 뻗는다. 좋아하는 이들에게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그 온기로 전해진다. 온기를 전할 수 없을 때는 카톡으로라도 닿고프다. 얼마 전엔 무슨 서류에 레퍼런스 지인을 쓸 일이 있어 몇몇에 부탁하고 돌아온 답변들. 물론이라는 즉답, 100번 쓰라는 말에 괜히 마음이 따스웠다. 픽 웃음이 나는 이런 순간들엔 공기 중에서 정체 모를 온기가 어깨에 사뿐 내려앉는다.
엄마가 종종 내 귀를 파주곤 했는데 지금은 남편이 아이들과 내 귀를 담당한다. 그 시간은 영 불편하지만 무릎을 베고 누운 순간 엄마를 떠올린다. 나는 몽글몽글한 기분으로 작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준다. 새로 들인 일제 손톱깎이가 너무 날카로운 탓에 이 덜렁이를 혼자 하게 두자니 불안한 탓도 있는데 난 그 시간이 묘하게 즐겁다. 물감이 잔뜩 낀 손톱을 잘라주며 하찮은 얘기를 나눈다. 작은 손가락을 하나씩 잡고 혹시 잘못 건드려 아플까 조심스레 손톱깎이를 딸깍이며 얘기하는 시간은 어쩐지 행복하다.
때로는 다정도 병이라고 한다. 나는 그 병이라는 다정이 너무 좋다. 누군가가 건네는 사소한 다정함은 사람의 매일에 존재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행복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