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게 꼭 필요한 두 가지

귀여워하고 긍휼히 여기기

by 미미

몸이 안 좋은가 싶었던 날, 부쩍 부족한 잠까지 몰아쳐 잠들었다가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한기에 깼다. 새카만 하늘을 확인하고 베란다로 열린 안방 창문을 닫은 다음 보일러를 올린다. 아이들 잠들길 기다리다 내가 잠들어버린 그 사이 자세가 불편했는지 목이 뻐근하고 아픈 데다, 티 안 나는 화장기만 겨우 남은 얼굴은 한껏 건조하다. 아이들의 수면 상태를 체크하고 나니 나 하나만 정리하면 되는 하루의 끝이 보인다. 귀에 노래를 꽂고 흥얼대며 하루 마무리에 열중했다. 음악의 리듬 대신 가사에만 꽂히는 날이다. 자다 깨서인지 정신은 맑은데 기분이 묘하다. 다음 날 같기도 하고 약간 쓸쓸한 것도 같고 그래서 어디 날 충전해 줄 무엇이 없나 둘러 찾는 그런 순간이랄까?


마음에 있는 먹먹함은 귀가한 남편의 고단함을 보니 한껏 커진다. 유독 그런 날 내 마음에는 수 개의 추가 묵직하게 달려 땅으로 나를 철커덕 끌어당긴다. 나는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이렇게 꼽는다. 물론, 내 맘대로 꼽는 두 가지이므로 모두에게 동의를 끌어낼 자신은 없지만, 내가 경험한 15년의 결혼생활 유지에는 이 두 가지가 핵심이다. 상대를 귀엽게 여김, 그리고 상대를 긍휼히 여김이다. 이 두 가지는 쌍방이어야 효과가 있거나, 일방이라면 장기적으로 전염성이라도 있어야 한다.


일단 지금 당장 이렇게 푸석해진 피부를 어찌하나 들여다보다 보면 잦은 노화의 발견으로 스스로를 귀여워하기 어려워졌다. 아침에 배게 자국이 몇 시간 흘러도 희미하게 남은 걸 안 순간, 또 어디서 영포티가 젊은 척에 불구하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문득 내 감정 어디쯤이 살짝 긁힌 것도 같을 때, 거울을 볼 때마다 눈꼬리가 점점 더 처지는 것 같다 싶을 때, 운동과 식이조절을 예전처럼 하다가는 유지가 불가능하고 쉬이 살찌는 나이가 됐음을 실감할 때, 나도 모르게 나이 듦을 묵상하곤 한다. 썩 유쾌한 묵상은 아니다 보니 어느새 귀여움은 카피바라나 수달이나 강아지를 보면서나 떠오르는 단어가 된다. 내 피드가 종종 동물로 뒤덮이는 이유는 귀여움을 충전하기 위함이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귀엽다는 말을 달고 사는 편인데 아이들이 아닌 나에게 그 표현이 향했을 때 설마 하면서도 나의 푸석한 모공 어딘가로 그 말이 흡수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설령 약간 뻥이어도 상관이 없지 않나 싶다. 어쩌면 연애 때와는 다르지 않고 여전히 상대가 가지고 있는 어떤 귀여움을 상대에게서 찾는 것이 부부 사이의 가장 중요한 사랑의 기술이 아닌가 싶었다. 어디 한 번 어디가 귀여운지 보자 하는 적극적인 마음 말이다. 자식이 내 키만큼 자라도 문득문득 귀여운 것처럼 짝꿍 역시 문득문득 귀여워야 평생 보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부부관계의 또 다른 핵심인 긍휼은 지극히 성경적으로 느껴지지만, 불쌍히 여김과 다른 뉘앙스가 내 마음에 들었다. 성경 속에서 내가 느끼는 그 단어의 뉘앙스에는 단순히 불쌍함 말고도 진한 애정과 깊은 사랑과 확실한 약속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기 연민보다는 배우자를 긍휼히 여김이 더 건강하다. 스스로가 짠해지는 순간, 배우자를 보며 긍휼히 여기는 것이 사랑에 유익하다. 이제 사람은 쉽게 죽지 않아 문제라는 유병장수의 시대가 자꾸 가까워지는데 나이 든 몸이 비실거릴지언정 쉬이 죽지도 못하고 살아야 하는 서로를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드라이를 했지만 머리를 바짝 말린다는 핑계로 수면시간을 미룬다. 올 겨울은 이런저런 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르고 싶어도 알고 해결해야 할 것, 내가 직접 결정해야 할 것, 선택지도 없는 내 인생의 미해결 사건들, 궁금한 데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소식, 별 거 아니지만 내가 꼬무락거리며 해야 할 잡스러운 일들에 치여 몇 달이 훌쩍 흐른 듯하다. 어떤 날엔 길을 다다다다 걷다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삶에 내가 모를 고민들이 가득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져 모두에게 긍휼함이 들기도 했다.


"모두 수고가 많아요. 그리고 본인은 잘 모를 수도 있고 누가 잘 몰라줄 수도 있는데 사실 여러분은 다들 꽤 귀여운 구석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와 아이들은 우리 동에서 예의 바른 인사봇으로 알려져 있다. 새해 인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구정 연휴를 맞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마치 1월 1일 즈음처럼 인사를 건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