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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함께 걷는다는 것

불편함을 털어놓는 과정

by 미미

“너희는 장난감 사달라는 얘기를 한 번도 안 했어...”


엄마는 어릴 적 우리 남매 이야기를 꺼낼 때 이런 이야길 하신다. 이 말에는 분명 사주고 싶어도 사줄 수 없었던 아쉬움과 미안함도 있을 거라는 걸 지금은 안다.


세상에 장난감 안 갖고 싶은 아이가 정말 있을까? 집에 늘어가는 변신로봇들을 보면 장난감의 세계는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눈에는 또봇도 카봇도 메카드도 그냥 다 비슷한 로봇인데 아이들은 그 하나하나가 안고 잘만큼 소중하다. 나도 어린 시절엔 분명 장난감이 갖고 싶었다. 2학년 때 인형의 집을 가진 친구 집에 놀러 가던 기억이 선명하다. 우와, 인형의 집이 2층이고 옷도 여러 벌 있어.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조르지 않는 아이였던 것은 그저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어려웠던 거였겠지.


오늘도 지뢰밭인 우리 집


감정을 털어놓는 일은 늘 어려웠고 지금도 때로 어렵다 느낀다. 언젠가는 그 감정을 털어낼 방법으로 일기를 썼더랬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어려워도, 쓴 글을 보여주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심지어, 대본 같은 걸 써서 돌려보여 주고 친구들에게 연기를 시키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 마음 맞는 친구들과 공원에서 하던 자체 특별활동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 손발이 없어질 것처럼 민망하지만, 당시에 되려 지금보다 자신감에 차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의 내 감정을 가장 바닥에 가깝게 보는 유일한 이는 바로 남편이다. 알콩달콩했던 연애시절은 이미 10년 전이고 신혼을 거쳐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는 동안 동지애를 키웠다. 어쩔 때는 혼동되고 판단하기 어려운 사이. 분명한 건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모습도 그 앞에는 점차 드러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부모님도 모르는 속내일 때가 많다. 친절한 딸로 남고자 함이 어떤 경우엔 소통의 부재를 낳는다는 것을 최근 깨달았다. 에둘러하는 대화가 오해로 남는 것보다는 직설적인 대화의 불편함을 견디는 편이 낫다는 걸 말이다.


남편과 내가 사귀기 시작한 건 아이폰 3GS가 국내 출시를 앞둔 무렵이었다. 어쩌다 보니 잠시 다니기로 한 회사에 출근한 지 며칠 지났을 때였다. 갑작스러운 오늘부터 1일은 새벽기도, 맥도널드, 스타벅스 도장 찍기와 출근길 동행으로 이어졌다. 워낙 새벽에 자고 아침잠 많은 남편을 보면, 역시 남자들이 가진 연애 초기 전투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부부로 살다 보면 '신비함'은 사라지고 '신기함'만 남는다.

- 엄마만 느끼는 육아 감정, 정우열 -


- 엄마만 느끼는 육아 감정, 정우열 -


11월이 다시 돌아와 결혼 9주년이 채워지고 10년 차에 들어섰다. 얼굴 보기 힘들게 바쁜 남편과 점심을 같이 하며 얘기를 나누며 세월을 실감한다. 연애시절도 신혼시절도 물리적으로 긴 시간을 함께하긴 어려워 싸울 틈이 별로 없었던 우리는 부부싸움도 참 뒤늦게 했다. 각자의 일을 하며 자기 삶을 살 때는 괜찮았지만, 아이가 생기며 홀로 자유를 박탈당하자 나는 한껏 날카로워졌다. 남편과 처음으로 큰 싸움을 하고 나서야, 난 내가 세상 그 누구에게도 이렇게 소리치며 싸워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었다.

우리가 서로 소리 지르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 보기 위해서라도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


과 동기들 카톡방에서 "묘하게 뭔가 강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한 녀석은 이 표현이 긍정의 의미임을 덧붙였다. 사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가끔 들었다. 특히, 날 오래 알아온 사람들에게 감지된 변화일 것이다. 연애를 할 때만 해도 내게 필요하지 않았던 전투력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발전했다. 어디 가면 순해서 자기 장난감도 빼앗기던 내 첫 아이를 똑띠 챙겨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육아 스트레스 한복판에 있는 내 상황을 대변할 사람이 스스로 뿐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의 불편함을 견디고 나의 반려자에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표현하는 방법들을 계속 익혀가고 있다. 고마움도 불쾌함도 거절도 부탁도 충분히 표현해야 상대가 내 마음을 아는 것이다.


몇 년에 걸쳐 남편에게 아이들의 주말 목욕을 부탁했다. 지금은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할 때가 많으니 토요일 저녁 한번 씻기는 건데, 몇 년이 흘러도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다.


"엄마랑 씻을래, 아빠랑 씻을래?"

(아무래도 익숙한 엄마랑 씻겠지...)

"미용실 가면 엄마가 안고 자를까, 아빠가 안고 자를까? 엄마는 살살 안고 아빠는 좀 세게 안을 거야."

(응, 나라도 엄마랑 자른다고 하겠다...)


아이들에게 던져진 남편의 질문들을 듣고 며칠 후, 나는 남편과 싸웠다. 몇 년을 하라고 했는데 그냥 씻기면 될 걸 왜 굳이 그런 옵션을 주느냐는 내 말에 남편의 결론은 간단했다. 그냥 씻기라고 말을 하라고. 해야 하는 시점에 시키는 건 잘할 수 있다는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으로 싸움이 마무리됐다. 물론 다툼이 발생한 게 저 이유 하나는 아니지만, 분명 우리 집 남자에게는 적절한 미션을 알아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아들 (및 남편)에게는 말을 뇌에 꽂아주지 않으면 귀에 들어가자마자 반대쪽 귀로 나온다는 아들연구소 최민준 소장의 강연이 떠오른다. 그 강연을 보는 남편은 빵빵 터졌다. 좋단다. 그래, 너는 내가 아니다. 같이 걷기로 약속한 동반자일 뿐, 독심술도 텔레파시도 없다. 불편해도 속내를 꺼내 나누지 않으면 오래 함께 걸을 수 없다.


연초에 첫째에게 받은 편지, 엄마 아빠는 같이 산 지 10년 째란다.


현관 밖에서 술 취한 노랫소리와 함께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늦으셨네. 얼굴을 보면 아는 아저씨일까. 분명 잔뜩 취한 채 집으로 향하는 저 아저씨는 기분이 좋은 걸까, 울적한 걸까? 그의 가족들은 그를 어떻게 맞이할까? 동네 시끄럽게 왜 노래를 쳐 부르며 오냐고 버럭 하는 아내가 있으려나. 구박 한 바가지 쏟아놓고는 술국을 끓여주는 어떤 이의 아침을 상상했다. 어쩌면 그런 구시렁거리는 날도 언젠가 그리워지지 않겠는가. 좋은 날보다 조금 덜 좋은 날과 안 좋은 날이 가득한 인생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 불편하지만 괜찮아.


근데, 우리 남편은 언제 집에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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