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3년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우울장애를 앓고 있던 내가 평범한 사람을 만나 평범한 결혼식을 하고 평범한 가정을 이룬 것을 이제와 생각하니 꽤나 뿌듯하고 운이 참 좋았구나-싶다.
나 역시 우울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것, 특히 나의 남편 H의 수고로움이 큰 도움이 되었는데...
우울한 인간이 자식에게 우울한 부모로 기억되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뿐 아니라 주변의 노력도 함께 필요하기에 글을 적어본다.
아이들은 모르는 우울한 엄마지만 그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우울하지만은 않았던 육아일기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H는 나의 어떤 점을 보고 결혼을 결심한 걸까.
그와 연애할 때만 해도 내가 우울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는 극심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고 감정기복이 매우 심했다.
게다가 H와 다툼이라도 일어나려고 하면 나는 득달같이 동굴로 들어가 숨어버렸고 그는 늘 우리 집 앞으로 찾아와서 나의 동굴을 부숴버릴 듯 길길이 날뛰었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어서 다툼이 시작되었을 텐데 내가 동굴로 숨어버리고, H는 나를 찾으러 다니느라 다툼의 끝은 "다신 동굴로 들어가지 않겠다" "잠수 타지 않겠다"로 합의하며 끝이 났다.
논쟁이 흐지부지 되는 바람에 다툼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니 늘 비슷한 주제로 다퉜다.
그러던 중 나는 가족들로부터 독립을 결심하게 되는데 H는 꽤나 솔깃한 제안을 했다.
'결혼'
나에게는 독립의 효율적인 방법이자 홀로서기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었고 H는 당연히 맞닥뜨려야 하는 인생의 과업 중 하나였다.
나야 뭐... 동기는 불순하지만 나를 위해서 결혼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쳐도 나보다 훨씬 많은 선택지와 여유가 있던 H는 왜 하필, 우울감에 휘둘리는 나와 결혼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종종 H에게 나와 결혼한 이유에 대해 물어보지만 본인도 그걸 모르겠다 하니...
이것이야말로 우연히 들어맞은 운명이 아닐까 싶다.
우울한 여자와 욱하는 남자가 만나서 조금 예민한 아기가 태어났다.
결혼생활 2년째 되는 해였다.
임신 기간이 내 인생 가장 행복하고 안정됐을 때라고 말하고 싶은데, 만약에 행복을 상대적인 감정이 아니라 절대적인 수치로 나타낸다면 "이 정도가 행복한 거라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임신 기간 동안 우울함을 느끼지 않으려고 관리하고 우울감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이지, 우울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혹시라도 나의 우울감이 아기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봐 우울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이미 우울장애를 앓고 있던 차에 이런 마음가짐은 오히려 죄책감만 유발했을 것이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
이 말은 사랑을 제대로 느껴본 사람이 사랑을 올바른 방법으로 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어린 시절 나는 감정기복 심하고 감정전이를 강요하는 엄마 아래서 성장했기에 스스로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일은 물론이고 부모가 가져야 할 역할과 전해주어야 할 사랑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느꼈던 아쉬움과 고통을 전해주지 않으리라 했던 다짐은 아기에게 집착하는 결과로 나타났고 아기에 대한 집착을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사랑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사랑이라 포장한 집착들을 깨닫고 하나하나 부셔 뜨려 가는 것
그것이 우울증 엄마가 해결했어야 하는 육아의 큰 산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