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vs 산후우울증
산후우울증이란 출산 후 4~6주 사이 산욕기동안 느끼는 우울한 기분, 불안감, 불면, 체중변화, 의욕저하와 무기력, 집중력 저하 등에 대한 생각으로 일상생활 기능 저하를 초래하는 질환이다.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느끼는 기분이나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것.
물론 산욕기가 지나고 심신이 안정됨에 따라 수일 내에 호전되기도 하지만 산후우울증이 1년 이상 지속되거나 양육이 불가능할 때, 자살충동을 느낄 때는 전문가의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아기를 출산하기 전, 남편 H는 내가 반. 드. 시. 산후우울증에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원래도 우울한 기분에 휩싸여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불안도와 긴장도가 높은 사람이니 출산 후 밀려오는 호르몬변화와 신생아 육아를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했던 H.
내가 원한다면 아기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일을 시작하거나 몸을 추스른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되니깐 출산과 육아를 혼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며 협박에 가까운 위로를 해줬더랬다.
호르몬의 영향 때문인지, 맡은 바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강박증에 불이 붙은 건지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감정기복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출산에 대한 공포는 겸허한 인정으로 바뀌어갔다.
이전에는 없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었는데 바로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절대 나처럼 불안하게 키우지 않을 거야'
오랫동안 알고 있던 노래가사를 자연스레 흥얼거리게 되듯이 나 같은 불안하고 불행한 인간으로 아기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기를 나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강한 염원은 우울증마저 가려버릴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이것은 '모성애' 라기보다는 나의 결핍을 나로서 다시 채우려는 욕심이라고 실토하겠다.
아이를 육아하면서 문득 뒤 돌아봤을 때 나의 아기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받고 싶었던 관심과 애정, 말들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깐.
유년시절에 대한 나의 집착이 어찌나 소름 돋던지.
아기를 낳는 고통?
생략하겠다.
그 고통을 어떻게 글자로 풀어낼 수 있겠는가.
내 몸 안에 있던 또 다른 심장이 나에게 뜯겨 나가는 고통 정도로 표현하면 되려나 모르겠네.
산후우울증은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부터 서서히 찾아온다.
많은 호르몬을 만들어내던 태반이 떨어지고 나면 혈액에서 호르몬 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생리학적으로 우울감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데 떨어진 태반호르몬에 적응하는 기간이 2~3개월 간 소요 된다고 한다.
우울감이 드는 와중에 시작되는 육아는 불안감과 무기력을 야기하기 쉽다.
나는 불안하며 초조하다.
초조하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강박이 시작된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한심한 인간이 될 거란 사고로 이어진다.
호르몬이고 나발이고 산후조리원에서 권유하는 모유수유, 모자동실, 신생아케어 교육을 착실하게 해냈다.
아기가 산후조리원에서 주는 분유를 먹으면 묽은 변을 싸길래 새로운 분유를 넣어줬다.
그럼에도 변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다.
유당불내증이 있는 것 같으니 엄마 모유를 많이 먹어야겠다고 해서 모유량을 늘리기 위하여 유축기와 새벽수유를 생활화했다.
산후우울증이 찾아올 시간이 없다.
산후우울증이 친절히 조리원 방문을 두드리는데 산모는 수유하러 가버린 격이다.
몸이 미칠 듯이 피곤한데 정신은 점점 또렷해진다.
차라리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좋겠다 생각한다.
신생아 돌보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사고가 점차 커져서 '육아'를 제외한 일들에 흥미가 사라진다.
아기와 육아에 대한 기대감은 곧 공허감으로 변해간다.
아기를 봐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육아에 대한 압박감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
아기를 돌보는 것이 원래 이리도 의무적인 행동인 걸까
삶은 왜 이리도 강박적이고 지루한 날들의 연속일까
이 시기에 남편 H는 신생아 돌보기를 함께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물론 나는 그 노력을 거부했다.
(그가 내 육아에 낄 틈새조차 없도록 방어했다. 하하)
내가 해야 할 의무를 그에게 부과할 필요가 없으니깐.
H는 묵묵히 아기를 보는 나에게 서운함 비슷한 아쉬움과 죄책감이 들었다는데 알게 뭐람
내 정신은 이미 '신생아 육아를 제대로 해내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내 신체는 지칠 때로 지쳐버렸다.
나란 우울장애인 삶 속에 산후우울증은 더해질 수 없었다.
이미 그보다 더 큰 우울감과 무가치함, 강박을 느끼고 있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