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주마등

삶의 끝에서 다시 돌아보는 그 시절

by 미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대략 83만 7808명으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매 년 늘어가는 추세라 한다. 나 역시 4년째 우울증 약을 먹고 있으니 2020년에 병원을 찾은 83만 명 중에 한 명이겠지. 몸소 와닿지 않은 많은 인원이 우울증을 앓고 있음에 놀라우면서 사람들은 제 각기 어떤 이유로 우울증을 앓게 된 것인지 궁금한 마음까지 생긴다. 나의 경우에는 청소년기 겪었던 가정불화로 인해 우울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흔한 우울에피소드처럼 우울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울증으로 발달하게 되었고 2n년이 흘러서야 우울 장애라는 본체를 들여다보았다.




사실 막연히 알고 있었다.

이미 나를 집어삼키고 있는 우울한 마음은... 이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어쩌면 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분노, 질투, 시기는 물론이고 기쁨, 환희, 기대 같은 긍정적인 감정 따위도 우울하도록 내버려 두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편안했다.

우울 장애를 겪고 있는 나는 겉으로 볼 때는 매우 그럴듯하게 사회화되어 있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활발하고 긍정적이라 평가 나 있었는데 사회적으로 즐거워 보이는 웃음 가면을 쓰려면 쓸데없는 감정 소비는 금물이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화를 삼키고 기쁜 상황에서 기쁨을 절제하며, 저녁에는 마음껏 우울해하는 것이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아끼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우울장애인인 나의 일상에서 진실된 행동이 몇이나 있었을까?

화가 나는 상황을 오랫동안 참다 보니깐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 맞는 것인지 판단력이 흐려지고 , 마땅히 축하받아야 할 자리에서는 몸 둘 바를 모르게 부끄러웠다. 나에게 분노는 죄악이었고 기쁨은 자만이었노라.

나는 늘 평상심을 유지해야 마음이 편안했고 스스로의 승리였다.

어떤 이들은 이런 내 모습에 착한 척이라며, 어딘가 벽을 치고 있다며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열일하는 나의 가면은 그들의 불신마저 녹일 정도로 사람들에게 헌신하며 나의 분노와 기쁨을 숨겼다. 대신 일정 기간 반드시 우울했어야 했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떨어지면 우울 장애는 늘 그렇듯 나를 완벽하게 잡아먹어버렸다.



한동안 모든 학업이나 일, 또는 대인관계를 완벽하게 해냈던 나는 불시에 사람들과 연락을 끊는다.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아서 말할 수도 없고 눈을 뜰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잠을 자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성인이 되면서 수면양상이 바뀌었는데... 청소년기에는 하루 15시간 이상 자면서 과수면을 이어갔고 20살이 되면서 불면 증상으로 바뀌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잠을 잘 수 없었던 날에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걸었다. 집에 혼자 무기력하게 있기에는 "완벽히 부지런한 인간상"을 추구하는 내 안의 강박증이 끊임없이 나를 다그쳤다. 내 방 밖에서는 실제로 엄마가 나의 무기력을 다그치고 있다. 집에 혼자 있기에는 나를 괴롭히는 존재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무거운 몸뚱이와 머리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무작정 걷는다.



공허한 눈

풍경을 담고 있으나 곧이어 흘러내려간다.

다리는 쉴 새 없이 걷고 있다.

3시간이고 4시간이고 걷고 있노라면 옷이 땀으로 범벅되었다가 다시금 빳빳하게 마르고 있다.

몸이 지쳐 쓰러질 것 같으면 그때서야 잠이 온다.

밀려오는 우울한 기분마저 모두 소진해야 잘 수 있었다.

잠을 잘 때면 눈물이 흘렀다.

믿지 않는 신에게 빌었다. 제발 내일은 눈 뜨지 않게 해달라고.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이었고 눈 뜨는 것이 악몽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들기 전에 늘 눈물이 났다.



그래서 일주일은 나가서 활동할 수 있는 5일, 휴식할 수 있는 2일로 만들어졌나 보다.

어떻게 신은 이토록, 완벽하게, 인간의 한 주기를 계획한 것일까?

청소년기의 나 역시 일주일 루틴에 맞춰서 평일에는 마음껏 웃고 일할 수 있었고 주말에는 마음껏 우울해하고 말하지 않고 울 수 있었다.

5일 동안 나는 우울 장애를 겪고 있는 거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공부하고 일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운동을 하고, 당장의 앞날을 계획하며 생각할 수 있었고 2일 동안 나는 스스로 의식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고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어울리지 않았으며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죽을 정도로 움직였고 다시는 눈 뜨지 않을 기세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10대를 보내며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나는 20대를 살다가 죽겠다. 반드시 죽을 것이다.

나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자의적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나는... 메말라서 어떤 경로로든 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짐작하기로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조금씩 우울감이 찾아왔고 학령기를 보내며 우울 장애가 심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20대 후반에 정신의학과를 찾았을 당시에는 이미 만성이 된 중증도 이상의 우울에피소드를 보였는데 언제부터 우울한 기분이 들었냐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불현듯 어릴 적 어느 날이 생각났더랬다.

(의사 선생님께 말할 때는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이라고 했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어느 날처럼 일터에 나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던 나는 집 밖으로 나가서 엄마를 기다려보도록 한다.

집 밖으로 나왔을 때가 이미 새벽 1시가 넘었었는데 몇 분을...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기다림에 지치고 졸릴 법 한데 그날은 유독 엄마의 얼굴을 봐야겠고 엄마와 함께 잠들었으면 하는 날이었다.


하늘이 점차 보랏빛으로 밝혀지면서 아주 몽롱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오랫동안 엄마를 기다릴 수 있게 해 주었던 이유였는데...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내가 이토록 간절하게 엄마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대견함과 곧이어 엄마가 나타날 거란 희망이 짙게 느껴졌다. 간간이 지나가던 차들마저 오랜 시간 보이지 않던 때에, 보랏빛 새벽녘 고요함을 뚫고 택시 한 대가 멈췄다.

고단하면서 안도감이 짙게 배인 엄마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하늘이 나를 감싸 안는듯한 환희와 행복감에 휩싸였다. 이제 두 팔 벌리고 뛰어가서 엄마를 껴안고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서 엄마를 안고 잠에 들게 된다. 나의 기다림은 곧 포근한 잠자리로 보상받을 것이고 우리 엄마도 나의 헌신 어린 기다림으로 오늘 쌓인 피로를 보상받을 수 있겠지.





"에이 시팔, 야 너 왜 안 자고 여기 있어? 너 뭐 하는 애야?"

"집에 누구 있어"

"넌 왜 안 자고 여기 있냐고, 시팔 힘들어 죽겠는데"





무수히 날아오는 욕과 모진 말에 순간 눈물이 날 뻔.


여기서 울면 안 돼

.

울지 말자

.

울면 안 돼

.

그럼 더 혼날 거야, 울지 않고 그냥 집으로 따라가자

그래야 혼나지 않고 가장 빠르게 이 상황을 피할 수 있어.



내가 기억하는 보랏빛 새벽녘의 기다림은 여기까지이다.

그다음에는 엄마를 껴안고 잤는지, 아니면 혼자 잤는지, 집에 들어갔는지조차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식으로 단편적인 순간 말고 전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 일들이 굉장히 많은데 대략 12살 이전의 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히 가족과 함께 했던 일들.

그러기에 가족 여행에서 찍힌 나의 어린 모습들은 무척 낯설기만 하다.

한탄강에서 팬티만 입고 울고 있는 사진이나 보라매공원에서 대형 풍선을 안고 있는 사진, 경복궁에서 브이 하며 뛰어다니던 사진, 집에서 혼자 레고 하던 사진...

많은 사진들 중에서 '아, 내가 이랬었지' 하며 생각나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나의 유년시절은 기억으로 남지 않고 감정으로 남아버린 모양이다.

이른바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너무나 슬프고 애달프고 화가 나고 허탈하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런지는 잘 모른다.



19살이 될 때까지 지냈던 새하얀 벽지의 작은 방을 생각해도 애달프기만 하고 가게일에 마치고 오후까지 잠을 자던 엄마를 생각해도 애달프기만 하다.

하나하나 장면들이 아직도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에서 떠다니는데 대화나 에피소드 따위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그저 슬프고 분노하다 못해 허탈했던 감정만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울증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쉽게 대중적으로 쓰이는데 우울 장애를 고치는 쉽고 대중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평생을 시달리고 나를 고통에 몰아넣는 이 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내 머릿속에 거대한 전시장을 만들어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이 실체는 실제로 존재하는 병일까

상담을 받고 약물 치료를 하면 완치될 거라 스스로 주문 외웠지만 벼랑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모습은 보랏빛 새벽녘에 눈물 참던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서 벼랑 끝으로 떨어질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운 나쁘게(?) 살아남았고 예나 지금이나 밀려오는 우울감을 몸소 느끼면서 어떻게, 어떡하면 우울 장애를 떨쳐버릴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우울 장애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긴 것이 30대가 되고 나서의 가장 큰 변화)



우울 장애라는 것은 이제 나를 너무도 잘 아는 또 다른 '나' 이기 때문에 내가 삶에 대한 열정이 생길 때는 고요히 응원해주기도 하지만 그 열정이 나를 삼키려고 할 때나 내가 그 열정으로부터 상처받으려 하면 부리나케 나서서 나를 우울감으로 포근히 감싸준다. 그렇기에 내가 녀석에 대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나의 우울 장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나에게 글을 쓸 한 자락 여유를 주는 우울 장애란 녀석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로 큰 감정 변동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상태.

글을 쓰고 생각하는 것까지 우울감이 들지 않을 때만 가능할 정도로 우울감은 이미 내 삶을 크게 통제하고 있으며 우울 장애 없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답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너무나 '평범한' 혹은 '평범해 보이는' 우울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