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수신증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임신했을 시기에도 여의사가 있는 산부인과는 언제나 북적였다.
남의사보다 여의사에게 진료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예약을 하고 산부인과를 방문했음에도 1~2시간 대기는 정해진 수순 같은 것이었다.
나 역시 임신 초기에는 긴 대기 시간을 견디며 여의사에게 진료받았지만 사람 많은 대기실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에 쥐약인지라 임신 16주쯤에 가장 대기가 짧은 의사를 주치의로 변경했다.
'이 선생님은 왜 이렇게 대기가 짧지?'
라고 생각하며 주치의 변경을 망설이긴 했지만 그때의 선택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내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아프다는 걸 알아차렸고 우울장애 증상으로 마음이 아픈 나를 효과적으로 위로해 준 잊지 못할 '명의'라 일컫고 싶다.
당시에는 강서구 소재 산부인과에 계셨지만 지금은 은평구 소재 산부인과에 계신 '송경근 원장님'
16주 태아초음파를 보시고 태아수신증임을 의심했고 크게 낙담한 나를 위로 해준 분이다.
선생님의 적당한 위로로 기분이 풀어지지 않는 것 같으며 실제로 수신증을 완치한 지인들을 보여주며 확률 싸움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게 해 준 의사 선생님이다.
지금 이 공간을 빌어 송경근 원장님께 감사인사를 전해본다.
한때는 신장을 떼녜마녜 기로에 서기도 했지만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완치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소견도 받았습니다.
산부인과에 방문했을 때마다 초음파를 보며 마음으로 울었는데 선생님의 위로는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손수건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태아수신증이란?
태아의 콩팥에 물이 차서 1cm 이상 커지면 '태아수신증'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태아 10명 중 4,5명에서 보이는 비교적 높은 비율의 이상현상인데 여아보다는 남아에게서 더 많이 발견되며 원인은 폐쇄성 요로질환, 방광 요관 역류, 다낭성 이형성 신, 중복 요관, 비폐쇄성 거대 요관 등이 있다.
산전 초음파에서 태아수신증을 보인 경우에 출생 후 추적검사를 통해 수신증을 진단하고 필요시 약물치료, 복강경, 수술등을 할 수 있는데 우리 아이는 방광에서 소변을 아예 배출하지 못하는 경우는 아니었고 방광으로 내려가는 혈관이 좁아서 물이 늦게 배출되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쁜 전후가 보이는 경우가 아닌 것 같고 태아수신증은 자연소실 가능성도 많다고 했는데 우리 아기는 결국 오른쪽 신장이 4.5cm 정도까지 비대해진 채로 출생했다.
우울장애인에게 '죄책감'은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비장의 무기이다.
나 때문에 아기가 아픈 것 같다는 죄책감
아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 같다는 죄책감
아이의 아픔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는 죄책감
신장 아픈 아기를 임신하며 육아하는 내내 죄책감은 나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대학병원 소아비뇨기과 방문을 예약했다.
태아수신증 비교적 높은 비율로 걸리는 병인데 상황에 따라서 위험도가 천차만별이었다.
일반 소아과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질병이었기 때문에 대학병원 예약은 언제나 치열할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생후 50일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을 방문했다.
태아수신증으로 대학병원에 처음 방문할 때는 출산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아기초음파 복사본과 진료의뢰서를 지참하는 것이 좋다.
진료의뢰서는 보통 한 달 이내의 자료를 가져가는 것이 좋지만 신생아가 처음 대학병원을 방문하는 경우에는 한 달이 넘어도 괜찮으며 아기이름과 아기 주민번호로 발급받아야 한다. (출생신고가 안되어 있거나 산부인과에 있을 때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으면 엄마의 개인정보가 적히기 때문에 다시 발급받아야 한다.)
수신증 때문에 병원에 방문한다면 신장초음파와 소변검사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진다.
초음파는 물론이고 소변검사까지 무엇하나 쉬운 과정이 없었다.
스스로 소변을 조절할 수 없으니 아기 생식기에 소변 패치를 붙이는데 소변을 보고 패치를 떼어낼 때 빨갛게 부어있는 아기생식기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큰 죄를 지은 느낌이 들었다.
생후 50일에 받았던 진단으로는 수신증은 물론이고 신장에 염증 소견을 보이니 한 달 동안 항생제를 먹으면서 지켜보고 다시 방문하여 신장초음파, 소변검사, 채혈검사, 신장기능검사를 받아야 했다.
수신증이라는 게 겉으로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당연히 호전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태가 이전보다 심각해졌다니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느낌인데 아무리 울려고 해도 눈물이 안 난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라는 물음만 수천번을 되새겨본다.
아기가 아프면 어떡하지
요로감염에 걸리면 어떡하지
아기가 죽으면 어떡하지
누군가 나를 겉으로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 심장을 밑도 끝도 없는 절벽 아래로 곤두박이칠 치고 있었다.
손이 덜덜 떨리는 게 아니라 심장이 덜덜 떨리는 것 같다.
나는 이럴 때면 나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이 든다.
무섭다.
도망가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나 스스로를 여태 책임감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그건 책임감이 아니라 강박증이었다.
강박증이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아픈 아기를 두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픈 아기에게서조차 눈치가 보였다.
나는 어쩜 이렇게도 쓸모가 없는 인간인지-하는 자기혐오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 개인경험에 의해 깨달은 지극히 주관적인 태아수신증
1. 태아수신증을 앓고 있는 태아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합니다.
2. 태아수신증 때문에 엄마가 받는 스트레스가 태아에게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3. 태아수신증이 악화될 경우에 임신한 상태로 태아에게 복강경 수술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4. 수신증이 있는 아기는 의사 상담하에 칼슘과 비타민 제품을 먹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는 먹이고 있다가 생후 50일에 모든 아기영양제를 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