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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Jan 08. 2024

딸의 뇌전증 판정을 듣고



세상에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나

믿지도 않은 신을 원망하고 

하늘을 저주하고 

이름도 모르는 조상을 캐내고



이 정도로 다행이야..

이 정도면 괜찮아..

라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불같이 원망하고

물처럼 너그러워진다.



바꿔 생각해 보면 

부모로서 이런 일을 당한 것보다

그저 세상에 떠밀렸는데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너만큼 힘들까



오히려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덜 죄책감 들고

덜 미안하고 더 사랑해 줄 때인지 모르겠다.



인생에 무수히 많았던 

좆같은 일들은 

늘 나를 무릎 꿇게 했지만

두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니기에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두 다리로 곧게 설 수 있고

흔들리지 않도록 양팔을 잡아줄 사람들도 있다.

엄마가 되어버린 뒤로

나는 약점이 생겨버렸지만 

약점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 일로

나의 약점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고

나와는 별개의 인생을 살아갈 너에게도

이 시련과 동시에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단단함과 용기가 생길 것이라 굳게 믿는다.



네가 후에 나를 원망할 때도

이 상황을 원망할 때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저 이 땅을 밟고 서 있을 뿐이고

부는 바람을 멈추게 할 이를 아무도 없다.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과 부는 바람 아래서

우리는 의지하며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고 행복하자



지금의 내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원망하고 감사하는 동안

후에 너도...

나와 같은 기분과 비참함이 

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엄마가 원망스럽더라도

엄마는 평생 너를 사랑하고

너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 아래서 

엄마를 용서해 다오



나의 약점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듯이 

너의 약점이 될 무언가가 

너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길.



그리하여 후에는

낙관적인 인생을 살아가길 

진심 어리게 소원한다.



너무나 사랑하는 내 딸에게

너에게 부는 바람에 

내 살점이 뜯겨나가도 

엄마가 모두 막아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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