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방인의 온도계:

1월의 시차

by lea

자카르타로 돌아온 아침
​누군가 나에게 1월의 열흘간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것을 '단순한 여행'이라 부르는 대신 '온도와 감각의 급격한 소용돌이'라 부르고 싶다.
​1월의 시차, 그리고 안갯속의 안부,
​영하 10도의 서늘한 칼바람이 불던 한국에서의 열흘간의 짧은 방문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자카르타로 돌아왔다.

비행기 문이 열리는 순간 덮쳐오는 눅눅하고 무거운 우기의 공기.

그것은 마치 커다란 젖은 솜이불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몸이라는 정교한 기계는 그 급격한 변동을 즉각적으로 감지했다.
자카르타로 오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열대나라의 우기 속에 ​사흘간 쏟아진 폭우와 함께 찾아온

몸살은 꽤 지독했다.


겉은 자카르타의 습한 열기에 짓눌려 뜨거운데, 속에서는 한국의 얼음 같은 한기가 가시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뜨거운 용암이 솟구치는 즉시 바스스 말라버리는 기묘한 불균형.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미세한 신경들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 정교한 메커니즘을 나는 침대 위에서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한국에서의 열흘은 단순히 기온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문화, 촘촘하게 얽힌 인과관계들, 그리고 그 안에서 바쁘게 회전하던 정신의 속도.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섞여 마치 '최초의 팬데믹 환자'가 된 것 같은 고독하고도 단단한 몸살을 앓게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 여정이 남긴 가장 큰 수확은 가방 속의 짐이 아니라,

나의 몸을 비추는 '따뜻한 시선'이었다.
​한국에서 받고 온 정밀 검진의 결과표는 나에게 일종의 '해독제'가 되어주었다.

결과를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막연하게 애태우던 시간들이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내 몸은 이제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이 먼 타국에서 나와 함께 견뎌온 가장 충실한 파트너로서 내 앞에 다시 섰다.
​신비로운 인체는 어떻게든 견디며 적응한다. 살려고 마음먹으면 살아지는 법이다.

그 마음만 굳건하다면.




이제 자카르타의 비 냄새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나는 천천히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리며,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나의 일상을 재정렬한다.

그것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뒤의 평온한 해안선을 바라보는 일과도 닮아 있다.

오늘은 차 한잔과 마음속의 대화를 나눴지만 내일은 다시 수영이다.

명상을 하듯이 나는 회복의 수영을 해야겠다.

그게 오늘이라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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