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과 통증사이:

개나리색 노랑(첫번째)

by lea

새벽 3시. 세상이 가장 깊은 침묵에 잠겨 있을 시간,


나의 몸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다. 통증은 예고 없이, 그러나 아주 성실하게

찾아와 내 몸을 뒤틀어 놓는다. 나는 익숙한 동작으로 온찜질 팩을 데운다.

열기가 서서히 전도되기를 기다리는 그 짧고도 지루한 찰나, 내 뇌신경 어디쯤에선가 부드러운 스파크가 일어났다.


​"오늘의 컬러는 노랑이다."
​눈앞에 선명한 형상이 떠오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어여쁜 개나리색.

통증이라는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그 색채는 기묘할 정도로 생생했다.

나는 통증을 달래기 위해 마그네슘 한 알을 삼키고, 뒷목에 뜨거운 찜질기를 댄 채 다시 몸을 뉘었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낮에 그릴 노란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 탓이다.

통증은 이제 쑤시다 못해 제멋대로 널을 뛰기 시작하고,

내 몸은 주인 없는 서핑보드처럼 높은 파도 위를

이리저리 출렁이며 매우 위태롭게 춤을 추어댄다.


눈을 감고 차분히 호흡을 고른다. 그리고 명상을 시작했다.

망나니 칼춤을 추며 널뛰던 신경들이 조금이나마 하나둘 고요히 잠들기 시작한다.

다행히 6시까지, 두 시간 남짓의 짧은 잠을 빌려올 수 있었다.

***
​인간의 뇌는 흥미롭게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정해져 있다.

이른바 ‘주의력의 한계’다. 통증이 뇌의 회로를 점령해 "아프다"는 신호를 쉴 새 없이 보낼 때, 역설적이게도 ‘몰입’이라는 구원병이 나타나

그 신호를 가로채기도 하는 것이다.

노란색이라는 시각적 영감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통증은 잠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것이 위험한 신호인 줄 알면서도 나에게는 멈출 수 없는 과정이다.

몰입의 역설이 빚어낸 화사한 색채 뒤에는,

반드시 치러야 할 신체적 비용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

지난주, 수액을 연달아 맞으면서도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했던 댓가는

오늘 새벽의 '극적인 폭발'로 돌아왔다. 뇌가 영감을 쫓는 동안 내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던 것이다.


​나는 휴식이 필요하다. 정말이지, 아주 많이.


​다행히 오후 1시까지 잠의 세계에 침잠해 있을수 있었다.

몸은 휴식을 간절히 원하고 나는 기꺼이 그 요구에 응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

미온수 한 잔을 마시고 나자,

또 다시 노랑과 휴식의 갈등이 시작된다.(고질이다)

그림을 그릴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쉼에 머물 것인가.

결국 나는 붓을 들었다.
​바보 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바보.바보.바보다.."

떠오르는 영감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망과 욱신거리는 통증 사이에서,

나는 결국 고통을 감수하는 쪽을 택했다.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붓을 쥐고 마는 이 미련한 집착. 스스로를 '바보'라고 뇌까리곤,

마그네슘 한 알을 입으로 천천히 녹이며

캔버스 위에 새벽녘 마주한 그 노란색을 조심스럽게 옮겨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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