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그리고 무슬림들의 라마단:

아데 아저씨의 ‘무딕(Mudik)’

by lea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런 내가 이슬람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무슬림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지도 어느덧 십여 년이 흘렀다.


전 세계 인구 4명 중 1명이 무슬림이라지만, 내가 곁에서 지켜본

이곳 사람들은 참 순하고 다정하다.

사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의 소식은 늘 마음을 무겁게 하곤 했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아이러니하게도 벌어지는

강경한 대립과 잔혹하게 벌어지는 끝없는 전쟁 소식들을 접할 때면,

' '평화와 순종'을 말하는 이들에게 왜 저토록

비극적인 갈등이 계속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사는 인도네시아의 이웃들은 달랐다.

이들은 따뜻한 미소로 '평화'라는 신념을 삶 속에서 묵묵히 증명해 내곤 했다.

그 신념이 가장 뜨겁게 빛나는 시기가 바로 지금,


라마단(Ramadan)이다.
​라마단은 이슬람 달력으로 아홉 번째 달로,

이 시기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엄격한 금식(Saum)을 행한다. (현재에는 그리 엄격하지는 않는단다)

처음엔 그저 고행이라 생각했지만, 여기엔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 시기가 특별한 이유는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이 처음 내려온

신성한 달이기 때문이다.


배고픔을 통해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며 자선을 베풀고,

스스로의 욕망을 절제하며 평소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되찾는 시간. 단순히 굶는 것이 아니라 화내지 않고,

험담하지 않으며 마음을 맑게 닦아내는 '경건한 수행'인 것이다.


​이 한 달간의 정성 어린 인내가 끝나면,

무슬림들의 '르바란(Lebaran)'이라 불리는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찬다.

공식 명칭은 '이둘 삐뜨리(Idul Fitri)'.

한 달의 금식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며 서로를 용서하고

축복하는 성대한 명절이다. 이때가 되면 마치 우리네 추석이나 설날처럼,

객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향으로 향하는 대이동이 시작된다.

이를 현지어로 '무딕(Mudik)'이라 부른다.
​다시 라마단의 계절(기간)이 돌아왔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를 들으니, 작년까지 우리 집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아데(Ade) 아저씨가 유독 떠오른다.


​아데 아저씨는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집사 일과 운전을

도맡아 해 주신 분이었다.

비록 우리 집에 고용되어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었지만,

아저씨는 우리 부부를 마치 친자식처럼 아껴주시던 마음 따뜻한 어른이셨다.

2021년 한 해 동안 우리가 미국에 가 있던 긴 시간 속에서도

아저씨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우리를 기다려주셨다.


다시 자카르타로 돌아왔을 때,

"건강하고 무탈하게 다시 돌아와 줘서 감사하다"며 누구보다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던 아저씨의 그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실함이 몸에 배어 있던 아저씨는 일 년 중 딱 한 번,

이 르바란 휴가 외에는 단 하루도 쉬신 적이 없었다.

노령에 지병이 있으셨음에도 아저씨는 신을 향한 사랑으로

금식을 거르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라마단이 시작되면 늘

아저씨의 건강이 염려됐었다. 그러던 작년 그 경건한 한 달의 끝자락에서 결국,

아저씨가 갑작스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셨으나,

인니의 부실한 의료 체계 탓에 순서만 기다리다 제대로 치료도 못받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십여 년간의 인연이 짧은 작별 인사도 없이 끊어지던 날,

***

나는 한동안 슬픔과 황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

​오늘 아침, 집안일을 도와주는 '쁨반뚜(pembantu)'

몸이 아프다는 연락을 해왔다. 이 시기에는 아픈 노동자들이 많다.

게다가 '우기'.

흔쾌히 내일까지 쉬라고 답장을 보내고 나니,

고향 보고르(Bogor)로 향했던 아저씨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그리워진다.


​아직 라마단이 한창 진행 중이지만, 이 길고 경건한 시간이

끝나고 나면 모두가 기다려온 축제의 날이 찾아올 것이다.


만약 아데 아저씨가 살아계셨다면,

아마 예년처럼 한 달간의 수행을 무사히 마치고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설레는 무딕 길' 위에 계셨을 텐데.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도 예쁜 세 딸들과 손주들에게 줄 선물 꾸러미를 품에 안고,

고향의 따뜻한 밥상을 떠올리며 인자하게 웃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곤 가족들에게 힘 있는 목소리로

"이드 무바라끄(Eid Mubarak, 축복받은 명절 되세요)!"라고 외치며,

인도네시아의 정겨운 인사 문화인 볼 맞춤 '찌삐까 찌삐끼(Cipika-cipiki)'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동안의 그리움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행복해했으리라.


​라마단의 '배고픔과 인내' 뒤에 찾아오는 이둘 삐뜨리의

'풍요와 기쁨'은, 어쩌면 평생을 성실하게 헌신해 온

아저씨의 삶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비록 이번 생의 무딕은 조금 일찍 끝이 났지만,

아저씨는 이제 그토록 사랑하던 신의 곁에서 배고픔도 병마도 없는

영원한 평안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는다.


​나는 아저씨의 신 '알라(Allah)'에게 기도했다.

"부디 이 성실하고 다정했던 영혼을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해 달라고".




"아데 아저씨, 그곳에서는 부디 평안하시길.

당신이 보여준 다정한 미소와 헌신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기록하며 비로소 보내드리는 인사


글을 쓰는 내내 아저씨의 환한 미소와 "무탈하게 돌아와 주어 고맙다"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 글은 아데 아저씨를 향한 나의 뒤늦은 작별 인사이자,

낯선 땅에서 나를 지탱해 준 한 다정한 영혼에 대한 기록이다.

아저씨의 신 알라에게 빌었던 나의 기도가,

종교의 벽을 넘어 하늘 어딘가에 닿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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