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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모사 Mar 20. 2022

그 고양이, 가필드

재작년, 지금 사는 이 빌라로 이사왔을 때

우리 단지 주위를 매일 배회하던 그 녀석.

들고양이지만 사람의 손을 많이 타서인지

서슴없이 먼저 다가와 골골거리고

간식이라도 주면 기쁨으로 털을 세우며

야무지게 주둥이를 내밀었다.


나는 곧 이 생명체에게 깊은 애정을 품게 되었고

어릴 적 보았던 만화 캐릭터의 이름을 따서

그냥 황토빛 털이 비슷하단 이유로

가필드라고 이름지어줬다.

단지 내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들은 달랐을 것이다.

야옹이, 앙이, 나비, 치즈...

하지만 내게는 하나뿐인 가필드였다.


아침빛을 받으며 집을 나설때도,

하루의 피곤을 잔뜩 달고 집에 들어올 때도

근처 어딘가에 있을 가필드를 찾았고

녀석은 대부분 내 앞에 나타나서

그 토실한 털복숭이 등을, 배를 맘껏 쓰다듬도록

가만히 몸을 내어주며 가르랑거렸다.


유난히 춥던 어느 겨울이 지나고

가필드는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곳곳에 쌓였던 눈이 사르르 녹고

새순이 돋아나고 꽃향기가 바람에  퍼지고

또 며칠이, 몇주가, 몇달이 흘러도

나의, 우리 단지 사람들의 애정을 독차지하며

담벼락 위를 위풍당당하게 걷고,

자동차 밑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고,

건물 외벽에 기대어 햇살 아래 식빵을 굽던

우리의 고양이, 나의 가필드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추위에 얼어죽었는지, 로드킬을 당했는지.

아니면 천만다행이도 다른 곳에서 잘 살고 있는지

행방은 알 길이 없지만 아직도

나는 가필드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보드라운 황토색 털의 촉감을

그 작은 생명의 심장의 울림을 기억한다.


가필드도 기억하고 있을까.

그 짧고도 평온했던 나날들을.

애정어린 눈빛과 손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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