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 토요일 저녁.
우리는 결혼 5년 차다. 그 전에 10년을 연애했다. 이제는 발렌타인데이라고 해서 촛불을 켜고 로맨틱한 디너를 하는 것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레스토랑들의 ‘발렌타인데이 스페셜’ 프로모션 리스트를 훑어보다가 순간 피로해졌다. 비용 대비 행복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조금 아쉬웠다.
전날 친구가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상영 중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어쩔수가없다>가 상영 중이었다. 20:45 상영표를 예매했다. 세 번째 줄 가운데 두 자리.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 사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내 나라와 문화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특히 당신 친구들과 있을 때, 한국에 대한 무지한 질문이 이어지면 내 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런 순간마다 혼자인 기분이 든다고.
나는 전반적인 감정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곧장 지난주 그의 친구 부부와의 식사 자리로 이야기를 돌렸다. 친구 아내가 한국 성형수술 문화에 대해 계속 질문했던 그날. 남편은 그녀가 나를 공격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들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다고.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내가 그의 친구들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할 때마다, 그는 늘 그들의 편에 섰다.
그 순간, 오래 눌러두었던 감정이 올라왔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렀다. 그리고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내가 이 유럽에 남아 있는 이유는 당신 때문이야. 이곳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피곤해. 그럴 때만큼은 당신이 내 편이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매번 친구들 편을 드는 사람과는… 더 못하겠어. 우리 이혼하자.”
남편은 바로 말했다.
“그래. 이혼하자.”
발렌타인데이 저녁에, 우리는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
나는 영화관에 전화를 걸어 표를 취소했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일단 혼자 영화를 보러 가서 기분전환을 할 생각이었다.
외투를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 남편이 물었다.
“영화 취소했어?”
“응.”
“어디 가?”
“혼자 보러 갈 거야.”
“나도 갈래. 다시 예매해.”
그 한마디가 화해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전 기운으로 덧붙여 말했다.
“당신은 내가 민감하다고 하지만, 그날 그 질문은 무례했어. 왜 굳이 한국 엄마들이 아이들을 성형외과에 데려간다는 이야기까지 해야 했을까. 나는 유럽에서 그 주제가 내 앞에 오를 때마다 지치고, 매번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도 힘들어.”
그리고 결국 말했다.
“어차피 이혼할 거라면 말할게. 나도 성형수술 했거든? 그래, 우리 엄마가 데려가서 했어. 이제 이해돼? 그 질문이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남편은 잠시 말이 없었다가 나를 끌어안았다.
“어디 했는데?”
“눈.”
“그래서 네가 그렇게 예쁜 거구나.”
그 말에, 울음이 터졌다.
“빨리 영화표 다시 예매해.”
그렇게 우리는 다시 <어쩔수가없다>를 보러 갔다.
언제 싸웠냐는 듯 손을 잡고 영화관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바에서 한 잔씩 들고 영화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관은 가득 찼다.
나만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영화를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영화가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덴마크에서, 발렌타인데이에, 한국 영화 상영관이 가득 찼다는 것.
사람들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여운으로 한동안 앉아있었다는 것.
그리고 웃으며 나왔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날 우리는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단지 결혼이 아니라,
이 하얀 대륙에서 나 자신과 내 나라에 대한 존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