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서 누구인가

by MM

사막에서 돌아온 뒤

나는 한동안 숨이 막혔다.


처음에는 사막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느낀 강렬함, 설렘, 흔들림 때문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사막은 원인이 아니라

드러냄이었다는 것을.


사막은 내 삶을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조용히 쌓여 있던 것을

가만히 드러냈을 뿐이다.


나는 단순히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와의 결혼을 ‘쟁취’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를 선택하는 순간

나는 동시에 다른 대륙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 거리가 이렇게

나의 숨통을 조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의 문화권,

그의 가족,

그의 친구들.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나는 그 세계 안으로 깊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확장이었다.

사랑이었고 선택이었다.

나는 적응했고, 배웠고, 조율했다.

그리고 잘 하고 있다고 믿었다.

행복했다.


나는 커리어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두 세계를 모두 쟁취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숨이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다.


20년을 다닌 직장을 떠나 휴직에 들어가면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커리어라는 외피가 벗겨지자

이 도시, 이 나라, 이 대륙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구조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화려한 경력의 무대였던 이곳이

어느 순간 나를 압박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여기서 누구지?


이 삶에서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지?


남편을 중심으로 이어진 인간관계.

남편 가족과 친구들 중심의 감정 구조.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에 강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사막은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그 유혹의 본질은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곳에서는

나는 아주 선명했다.


낯선 공간,

낯선 언어,

낯선 구조 안에서


나는 오히려 또렷해졌다.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어떤 직함도 아닌

하나의 존재로.


사막에서의 감정이 강렬했던 이유는

누군가에게 끌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내가 다시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돌아와서 깨달았다.


내가 두려웠던 건

그 사람을 다시는 못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흐릿해질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남편과 헤어지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그를 떠나면 숨이 트일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동시에

공포가 밀려왔다.


그 과정에서 내가 더 부서질까 봐.

방향을 잃을까 봐.


처음에는 모든 것을 관계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곰곰이 보니

문제는 관계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 축이었다.


나는 사랑 안에서 나를 확장한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랑 안에서 나를 줄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탈이 아니다.


나의 축이 회복된 삶이다.


남편을 중심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남편과 나란히 서는 삶.


그의 대륙 안에서 적응하는 삶이 아니라

내 대륙을 함께 세워가는 삶.



사막은 나에게 말했다.


너는 아직 살아 있다.


그 강렬함은

유혹이면서 동시에 경고였다.


이대로 가면

너는 점점 작아질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관계를 무너뜨리는 대신

구조를 바꾸기로 했다.


하루에 하나씩

내 이름으로 된 시간을 만든다.


내 언어로 쓰고,

내 생각으로 결정하고,

내 인간관계를 넓히고,

내 욕구를 인정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삐그덕거리고,

숨이 막힐 때도 여러번 있다.


하지만 서서히 깨닫고 있다.


이 감정이

붕괴의 신호가 아니라

복원의 신호라는 것을.


사막은 나를 빼앗지 않았다.


사막은 나를 보여주었다.


나는 지금

대륙을 건너온 여자에서

나를 되찾는 여자로

천천히 이동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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