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에게는 브런치 계정이 두 개 있다.
첫 번째 계정은 요가에 대해 쓰기 위해 만들었다.
요가에 관심 있는 분들이 주로 구독을 했다.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몇몇 구독자들과는 글로 오랫동안 소통하며 어느 정도 친분도 생겼다. 구독자 중에는 엄마와 동생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플랫폼은 단순히 글을 올리는 공간이 아니라,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라는 것을.
팔로워가 생기고, 하트가 달리고, 댓글이 오가면 글은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점점 읽히는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점점 구독자를 의식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하트 하나, 구독 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심리니까.
나를 날것으로 드러내는 글은 그곳에 쓸 수 없었다.
특히 가족이 읽는다고 생각하면 낯뜨거울 이야기들은 애초에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나의 글은 조금씩 안전해졌다.
남에게 보여주어도 괜찮은 이야기, 가족이 읽어도 무리 없는 문장, 설명 가능한 감정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율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한동안 글을 멈췄다.
그러다 사막에서의 경험과 그때의 감정들이
자꾸 글이 되고 싶어 했다.
그 이야기는 안전한 버전으로는 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혼자만의 일기로 묻어두고 싶지도 않았다.
사막의 시간과, 그 소중한 경험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들을
정성스럽게 다시 빚어내고 싶었다.
읽히는 글로.
그러나 그 이야기는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보여줄 수 없었다.
누군가의 윤리적 판단 위에 올려질 수 있는 경험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두 번째 계정을 만들었다.
안전하지 않은 글이어서였을까.
구독자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공간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꼈다.
흥미롭게도, 팔로우가 늘어날수록 글은 설명적이 되고,
팔로우가 줄어들수록 글은 솔직해지는 것 같다.
팔로우가 0이었을 때, 나는 가장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었다.
어쩌면 두 번째 계정은 글쓰기 실험이 아니라,
플랫폼 위에서 나로 남는 법을 배우는 연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