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이름의 공백

by MM

휴직 이전 나를 가장 불안하게 했던 것, 그리고 휴직 이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방향성의 상실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향하고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거창한 목표가 아니어도 좋다.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어도 좋다.

다만 감정이 반응하고, 몸이 자연스럽게 기울어지는 무엇.


방향이 있다는 것은 결국, 내 에너지가 흘러갈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휴직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나의 베르베르 사랑」을 썼다.

매일 아침 글을 쓰며 하루에 구조가 생겼다.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를 하루 속에 붙들어 두는 장치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언젠가 끝난다.

사막 여행기를 완결하고 나자, 나를 지탱하던 구조도 함께 사라졌다.


그 순간 드러난 것은 자유가 아니라 공백이었다.


자유는 종종 낭만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방향 없는 자유는 쉽게 무력감으로 변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 자존감은 조용히 흔들린다.


방향성의 상실은 단순히 계획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감각이 흐려지는 경험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사치라 말할 수 있다.

당분간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과, 시간과 자유가 주어졌다는 이유로.


그러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자유는 감옥이다.

의미를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이번 휴직은 선택이 아니라 상황이 만들어낸 멈춤이었다.

그래서 더 낯설었다.


그렇게 겨울 내내 방황했다.

자존감은 낮아졌고, 예민해졌다.

관계 속에도 미묘한 긴장이 스며들었다.


그러던 중, 구정 직후 예상치 못한 변화가 찾아왔다.


아주 간절히 원하는 것이 생겼다.


예전 직장에서 내가 탐내던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지긋지긋해하던 곳으로 돌아가기를 이렇게 바라게 될 줄은 나 자신도 몰랐다.


어쩌면 휴직 이후 겪은 정체성의 균열이,

예전에 누리던 것들의 의미를 다시 보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그 소중함을 알고, 더 성숙하게 임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나는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합격할지 알 수 없다.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다.

내 안에서 방향이 다시 생겼다는 사실이다.


방향이 생기자 에너지가 달라졌다.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생각이 선명해졌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결과가 아니라, 향하고 있다는 감각을 필요로 했다는 것을.


어쩌면 인간은 목적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가 어떻게 끝날지는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일단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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