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사랑한다.
이 문장은 여전히 변함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요즘 그의 친구들 문제로 자주 부딪힌다.
처음에는 단순히 ‘누구를 만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이 갈등의 본질은 친구가 아니라, 같은 편이라는 감각에 있다는 것을.
연애 시절부터 나는 남편의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만나왔다.
그의 세계를 존중하는 것이 사랑의 일부라고 여겼다.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고, 불편한 감정이 생겨도 쉽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생겼다.
나는 어디까지 그의 세계에 맞춰야 하는가.
그리고 내 감정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최근에도 친구 문제로 다퉜다.
내가 불편함을 말하자, 남편은 친구를 먼저 이해하려 했다.
그 순간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이 사람이 지금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 묻게 되었다.
물론 내 안에도 그림자는 있다.
타지에서 오래 살며 쌓인 상처와 예민함이
사소한 일에도 크게 반응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분석이 아니라 연대를 원했다는 것.
원인을 따지고, 누가 더 합리적인지 설명하는 대신
“나는 네 편이야”라는 태도를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일이라 하지만,
완전히 하나가 되기보다는
서로의 편으로 서 있는 일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나는 남편의 친구들을 모두 좋아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선택의 영역이다.
그러나 나는 남편이 나를 선택해주기를 바란다.
적어도 내가 흔들리는 순간만큼은.
이 깨달음은 또 다른 결심으로 이어진다.
나는 나의 기반을 단단히 해야겠다.
그래야 우리는
의존이 아니라 선택으로 함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 자신을 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단 결혼 이후 몇년동안 자발적으로 방치해둔 커리어부터 다시 붙잡아야겠다.